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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루트를 가다' 1부, 10월 7일(월) 밤 11시 20분 방송
MBC가 드라마 [대장금] 방영의 10주년을 맞아, [대장금]이 방영된 세계 각국을 돌아보며 [대장금]일 불러일으킨 ‘열풍’의 현재를 조사하는 ‘대장금 루트를 가다’ 1부를 방송한다.
2003년 방송된 사극 [대장금]은 방송 이후 10년 동안 전 세계 91개국에 수출되며 한류열풍의 주역이 되었다. 기존의
드라마들이 아시아 시장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이란, 사우디 등 중동지역은 물론, 짐바브웨,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에까지 진출하며 [대장금] 팬덤을 만들어냈다. 평범한 신분의 한 여자가 이룬 성공스토리는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었다. 물론 다양한 국가들에 판매된 한국 드라마들은 많다. 하지만 [대장금]처럼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어떤 장벽도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 드라마는 없었다.
‘대장금 루트를 가다’는 [대장금] 방송 10주년을 맞아 [대장금] 열풍의 원인과 영향을 전 세계 13개국 현지취재를 통해 분석해 본다.
2013년 가을, 이영애와 이병훈 감독의 특별한 만남 성사!
2004년 [대장금] 종영 이후 10년 만에 이영애와 이병훈 감독이 다시 만났다. 이병훈 감독은 아직도 이영애를
‘장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동안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대장금]의 캐스팅 비화부터 당시 촬영장 뒷이야기,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을 들어본다.
“지금 저의 애기 아빠, 남편이. 적극 추천을 했었죠. 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요리는 배우지 않겠느냐. 궁중요리라도 배우면 남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저도 또 행여나 했었죠”
“스텝분들이 그러셨대요. 왜 장금이는 아프지도 않느냐, 좀 아파야지 우리가 쉴 텐데 왜 안아프냐. 안 아픈게 아니라 그게
긴장을 하고 있으니까... 촬영이 끝나고 나서 제가 열흘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앓았거든요. 그리고 막 턱도 돌아가고 그 이후로 턱
관절(장애)가 생겼어요”
- 이영애 인터뷰 중에서
“장금이하고 민 종사관하고 둘이 손잡고 눈길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큐 하고 잠이 들어버렸어요. 1-2분이면 끝나는 걸 5분이
지나도 눈길에 컷을 안 하니까 가다가 민 종사관인가 장금이가 넘어졌어요. 그런데 내가 모자쓰고 파카입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까
자는지 안 자는지 모르고 감독님이 필요하니까 5분 동안 계속 찍는구나 스텝들은 생각하고, 나는 자고 있었고...”
- 이병훈 감독 인터뷰 중에서
실론티의 고향 스리랑카, [대장금]에 푹 빠지다
2013년 3월, 시청률 90%를 넘기며 [대장금]이 방송된 스리랑카에는 거리의 재봉사 모집 광고에도, 영어 학원 간판에도, 달리는 택시에도, 장소불문, 이유불문 온통 장금이 사진이 붙어 있어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장금이처럼 궁녀의 삶을 살고 있는 11살 소녀 띠야기. 장금이를 따라하기 위해 궁녀 옷도 직접 만들어 입고, 잠도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밥도, 걸음걸이도 24시간을 [대장금]의 장금이처럼 행동 한다. 장금이의 대사를 줄줄 외우며 장롱 속에는
비녀, 젓가락, 옥반지 등 [대장금]에 나왔던 그녀만의 보물들이 한 가득이다.
지난 9월, 스리랑카 역사상 최초로 외국 배우의 이름을 딴 ‘이영애 장학 재단’(장금이 장학재단)이 설립 됐다. [대장금]
방송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된 루파바히니 방송국의 수익금 일부와 이영애의 기부금을 전달받아 기술계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
설립이 이루어지게 된 것. 이 자리에는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영애가 직접 영상메시지를 전달했다.
“스리랑카와 수교 35년이 됐는데요. 저희가 이 대사관에서 해 왔던 것들보다 지난 몇 달 동안 [대장금] 방영으로서 스리랑카가 한국을 알고, 한국을 받아들였던 효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 스리랑카 최종문 대사 인터뷰 중에서
아프리카 내전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준 [대장금]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꼽히는 시에라리온. 10년에 걸친 내전은 사람들의 팔과 다리, 가족, 삶의 의지를 잃게 만들었다. 그런 시에라리온에도 [대장금]이 방영됐고 사람들에게 힐링제 역할을 했다.
[대장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길거리의 작은 가게 앞에 옹기종기 모인다. 발전기를 이용해 돈을 받고 핸드폰을 충전해 주는
이곳은 남은 전기를 이용해, 무료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어준다. 때문에 작은 TV 한 대를 놓고 줄을 서서 보며 울고
웃는 진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대장금]을 보고 희망을 얻은 마리아뚜(13). 빠듯한 살림 탓에 지방으로 일하러 간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그녀는 스트레스를 받아 한때는 탈선의 길을 걸었지만 엄마의 추천으로 [대장금]을 본 뒤 장금이를 본받아 재봉일은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한다.
“엄마가 지방에서 일할 때 제가 동생들을 돌보느라 힘겨웠죠. 그래서 방황을 했었는데 [대장금]을 보기 시작하면서 장금이가 고생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제 마음도 바뀌었어요”
- 마리아뚜 인터뷰 중에서
Show ‘Dae Jang Geum' on BBC! (‘BBC에 대장금 방송을 허하라!')
영국 공영 방송사 BBC 앞. ‘BBC에서도 대장금을 방송하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 소녀가 있다. 그 소녀는 바로
앨리스 베넬(25)이다. 전 세계 91개국에서 방영 된 [대장금]이지만, 영국에서는 [대장금]을 볼 수가 없었다. 2006년
우연히 앨리스는 [대장금]을 보게 되었고, 마음을 사로잡혀 BBC에서도 [대장금]을 방송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고 있는 그녀는 2012년 ‘런던뮤직페스티벌’에서 ‘올해의 작곡가상’을 받은 재원으로, [대장금]을 본
후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돼 ‘한국문학 독후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BBC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BBC에서
[대장금]을 방송하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탄원 운동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앨리스. 과연 [대장금]은 BBC에서도 방영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다. 장금이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BBC에서 언젠가 [대장금]을 방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금이 파이팅! 앨리스 파이팅!”
- 앨리스 베넬 인터뷰 중에서
벨라루스의 고려인 노부부, 그들이 고이 간직해 온 [대장금]에 얽힌 사연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고멜. 매일 아침·저녁으로 [대장금] DVD를 틀어 챙겨보고, 방송시간을 잊어버릴까 종이에 적어
가슴에 품고 사는 고려인 노부부가 있다. 할머니는 40년 전 고향을 떠나올 때 아버지가 챙겨준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고, 조선
노래 테이프를 따라 노래 부르며 춤을 춘다. 이것이 노부부가 향수를 달래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올해 봄, 이 부부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보물이 생겼다. 벨라루스 방송국을 통해 최초의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 된 것. [대장금]을 통해 향수를
달래고, 삶의 의미를 되찾고 있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대장금]을) 보다가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는 거예요. 그래도 계속 봤어요. 민족 드라마니까, 제 고향이잖아요.”
- 이리나 한 할머니 인터뷰 중에서
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장금]. 이 [대장금]이 흘러간 길을 따라가며 그 의미를 되새겨본 ‘대장금 10주년 MBC 특별기획-대장금 루트를 가다’ 1부는 오는 10월 7일(월) 밤 11시 2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