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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작성자 Hongtchung
작성일 2014-02-06 12:20
ㆍ추천: 0  ㆍ조회: 5383      
종이 신문에 작별을 고하노라


“어제 신문 구독을 끊었어요.”
며칠 전 아침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한 말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을 끊자고 아내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해 왔기 때문이다.

은퇴 후, 우리는 살던 집을 팔아 지금 사는 이 콘도미니움으로 이사왔다.

새 삶의 터를 꾸미면서 아내는 고속 인터넷 을 설치하고는 큰 선심을 쓰는 양
내게 말 했다.
“매달 인터넷 사용료를 100불 이상 지불하니까 이제부터는 문명의
이기와 더욱 친해 지세요.”
인터넷 속에 들어가면 모든 신문 잡지가 다 있으니 보고 싶은 기사들을

모니터에 떠 올려 읽으라는 것이다. 나중에 필요 자료는 컴퓨터에 저장해
면 되니까 구태여 신문을 따로 구독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이 사람의 주장이다.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신문 하나 쯤은 꼭 보아야 한다고 줄기차게
우겨온 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내의 주장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지만

나는 나 대로의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걸 어떡하랴.

첫사랑처럼 달콤한 인연을 나는 오래 전부터 종이 신문과 맺어왔다. 이것을

아직 아내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고백한다 해도, 한정된
수입 내에서 살아가려면 그 안에서 지출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원칙에 내 청원은
한갓 철없는 애들의 투정같이 들릴 거라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다.

1953년 9.28 수복 후, 나는 열 세살 까까머리 소년이었다. 서울 돈암동에 살던

나는 어느 날 오후 친구를 따라 시내의 어느 신문사 앞엘 갔었다.(미도파 백화점
경향신문사 였다는 것은 후에야 알았다.) 가 보니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 애들이
길 가득히 모여 무엇을 기다리는 듯 삼삼오오 서있었다. 얼마 후 검은 잠바를 입은
키가 큰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와서 각자에게서 돈을 걷어가지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처음 본 어른에게 가져 온 돈을 몽땅 주었는데 그 사람이 사라지자 마음이
몹시 불안해 졌다.

얼마를 기다렷을까, 그 사람이 가슴 가득히 신문을 가져 오더니 우리 각자에게
돈 낸 만큼 나누어 주었다. 내 품에 안긴 한 뭉치의 신문에서는 아직도 띠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풋풋한 인쇄 잉크 냄새가 강하게 코를 자극했다. 받자마자 논에서 메뚜기
튀듯 우리는 제 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뛰기 시작했다.

“경향 신문요. 경향 신문요.”
신문을 팔에 들고 크게 외치며 나는 돈암동을 향해 힘껒 달렸다. 을지로, 종로,

돈화문, 창경원 앞 거리를 뛰어가니, 사람들이 나를 불러 돈을 주고 신문을
산다. 팔 위의 신문은 점점 가벼워지고 주머니는 돈으로 불룩해지며 무게가 느껴
졌다. 신문에서 나는 기름 냄새가 나를 쉬지 않고 뛰게하는 동력원이었다.

아, 그 때 만일 내가 신문 냄새에 반하지 않고 주머니 속의 돈 무게를 더 사랑했었

다면 아마 지금쯤 큰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하여간 난생 처음 내 힘
으로 돈을 번 것이 바로 이 신문 덕이었다.

그 후로 나의 신문사랑은 반세기를 넘어 변함없이 계속 되었다. 어린 나는 만화

<고바우>를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조금씩 들여다 보게 되었다. 또 만화 <왈순
아지매>를 보며 살벌한 세상을 유머적으로 해석해 웃으며 보는 방법도 해득했다.
언젠가는 서울신문 연재 소설에 김영주라는 화백이 삽화를 그렸는데 몇 줄 선(line)

만으로 그려진 젊은여자 주인공에게 홀딱 반한 적이 있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아니라 삽화로 그려진 처녀의 얼굴에 말이다. 지금도 그 녀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
르니 아마도 내 이성에 대한 첫사랑은 이 신문 속 삽화가 아닐까 한다.

요즈음도 신문 읽기는 내 하루 시작의 통과례 이다. 매일 아침 식사 후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며 신문을 펴면 온 세상이 내 손 안에 들어온 듯 뿌듯해 진다.
신문 옆에는 언제나 12inch 플라스틱 자와 가위가 따라 다닌다. 흥미 기사, 만화,
사진… 등등 나의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스크랲 감이다. 나는듯 마는듯한 
인쇄잉크 냄새는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안정시켜준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매일 가계부와 씨름하는
아내에게 나의
신문에 대한 고집을 계속하면 그것은 사치를 넘어 늙은이 망령으로 까지 보일
게 뻔하니까.

자, 마음을 정리하자. 그리고 잊어버리자. 손가락을 까맣게 물들이는 인쇄
기름과
잉크냄새, 좋은 기사 만날 때의 그 신선한 기쁨도, 그 기사를 오려낼 때 들리는  
‘사각사각사각’ 연한 가위질 소리도…… 이 모든 것이 세월이 가면 기억에서 지워질
수 있을까?

오래 전 직장 동료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거지신사>라는 조그만 조각품이 생각난다.

그 <거지 신사>는 공원 벤치에 폼잡고 앉아 신문을 펴 들고 있는데 바지는 헤져서
무르팍이 드러났고 머리 위 삐딱하게 걸친 낡은 중절모도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다.
이에 상관않고 신문을 넓게 펼쳐들고 있는그 얼굴은 만족과 여유가 넘쳐 흐른다.
그 신문의 제호는 이름하여 <New York Times>.

비록 남루한 옷을 입었을지언정 여유 있게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쫙 펴서 세상을

읽는 그 멋을 어떻게 집안 책상 앞에 앉아 싸움하듯 컴퓨터 화면을 쏘아 보는 모습과
비교할 수가 있을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을 본다. 배달 신문과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이별곡을 쓰고 있는 내 손은 종이와 펜 대신 컴퓨터와 마주해 글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까.


                                                                            -- 끝 --




 
이름아이콘 운암
2015-05-18 23:24
잘 읽었읍니다. 그런데 나 역시 마음이 아프네요. 경제적인 계산으로는 지당하신 판단이나, 우리의 삶이 정신적인  
양식이랄지 또는 낭만이라 할지? 우선 순위 결정이 부부 사이에서는 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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