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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그림 혹은 타이틀을 클릭하시면 해당사이트로 연결됩니다.** ㅁ방송: KBS한국사傳 13편 ㅁ제목: 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고려 영웅 김윤후 -1592년 임진왜란, 김윤후는 화살 하나로 적장(살리타)을 맞혀 죽여 몽골군을 물리쳤으니.. 당시 김윤후는 의병운동의 상징이었다. -1231~1259년, 고려 몽골 전쟁, 김윤후, 그는 고려의 대몽항쟁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인물이었다. -1232년, 고려에 불안한 전운이 감돌이 시작한다.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항쟁의지를 들어낸다. -최우, 40여 년간 대몽 전쟁을 시작한다. -몽골의 총사령관이 사리타가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처인성)에 도착까지 도착한다. 백성들은 김윤후(승려)를 중심으로 항쟁의지를 펼친다. 김윤후는 단 한발로 적장을 사살한다. 처인성 전투 이후, 그는 승복을 벗고 무도의 길을 걷는다. -처인성은 당시 군창기지(성벽의 길이가 100m도 되지 않는 작은 성)였다. -천하의 몽골도 수중 전에는 약했다. 고려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겨 항쟁한다. -고려는 강화도를 중심으로 전쟁에 대비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전쟁에 속수무책이었다.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항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몽골은 6번 고려 침입, 1차:1231년, 2차:1232년(처인성전투 승), 3차:1235~1239년, 4차:1247년, 5차:1253년(충주성 전투 승), 6차:1254~1259년, 두 번 모두 김윤후. -1253년, 충주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에쿠(몽골군 총사령관), 김윤후(충주산성 방호별감). 70일간 전쟁하는 중 몽골은 내분이 일어났다. 충주성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윤후 노비문서를 태우고 벼슬을 내릴 것이라 고했다. 사기 진작. 승리로 이끈다. -몽골군에 대항한 고려의 무기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기계식 활, 충주에는 다인철소(재철공장)도 있었다. -김윤후는 왜 역사 기록에서 적을까? 몽골의 6차 침입, 6년간, 국토는 초토화, 1259년 결국 항복하게 된다. 쿠빌라이 칸(원 나라)의 1세기 내정간섭. 김윤후의 항전기록은 오히려 반역이었다. 1392년, 조선 개국이후 억불정책으로 고려시대의 승려들은 크게 부각되지 못한 연유도 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병들의 롤모델로 김윤후가 다시 등장한다. -김윤후, 그는 위기의 순간 조선의 백성들의 마음에 기억되고 있던 고려의 영웅이었다. -역사는 힘 있는 사람, 승리한 사람의 언어로 기억되기 쉽습니다. 여러분은 대몽항쟁의 삼별초, 최우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오늘은 대몽항쟁시기 풍전등화의 조국을 두 번이나 구한 고려의 영웅 김윤후 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