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리아의 아리랑
우리나라와는 국교가 없는 쿠바 출신 유학생 1호 아자리아 임.
한남대학교 린튼글로벌칼리지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쿠바 한인 4세.
아자리아의 가족사를 통해 쿠바 한인이민사를 알아본다.
▷ 국립현충원에서 만난 증조할아버지
대전국립현충원에는 아자리아의 증조할아버지(임천택)의 묘소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쿠바에서 생을 마친
증조할아버지의 무덤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아자리아의 동선을 통해
쿠바한인이민자들의 삶을 재구성해 본다.
▷ 사기 당한 이민
1905년 아자리아의 증조할아버지는 3살의 어린 나이로 홀어머니의 품에 안겨
멕시코 이민 길에 오른다. 그러나 멕시코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엔 노예와도 같은 생활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이민회사와 브로커 마이어스의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 가장 고단하고 외로웠던 이민자들
아자리아의 증조할아버지는 노예와도 같은 멕시코 생활을 견디고
1921년 쿠바로 재 이주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힘없는 조국을 원망하고 때로는 도우며 견뎌야 했고
쿠바혁명 후에는 남한과 철저히 단절되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하물며 쿠바와 수교국인 북한도 그들을 외면하긴 마찬가지였다.
▷ 쿠바의 한인들, 그들의 정체성은
쿠바의 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현지에 철저히 동화되어야 했다.
3세대 이후는 한국어도 모두 잊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들이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의식도 공존하고 있다.
▷ 아자리아의 아리랑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 역사를 알게 된 아자리아 임.
그녀는 할아버지의 조국일 뿐이었던 한국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불완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쿠바인 아자리아의 아리랑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