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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대공황으로부터 구하고 독재국가들에 맞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데 일조했으며 대통령직에 네번이나 당선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불구의 몸으로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이토록 놀라운 인물로부터 리더십에 대해 건질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주는 리더십에 관한 다섯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쨰, 목표는 명확하게 하되 수단은 유연하게 하라. 1939년에서 1941년 사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을 분열되고 턱걸이 상태의 중진국에서 글로벌 리더 국가로 변모시켰다. 그는 고립주의를 변방으로 몰아내고 국가를 이끌면서 전쟁에도 참전하게 했다. 이러한 국정 운영은 신중함과 뛰어난 외교 수완을 필요로 하였다. 그의 전술적 방향은 끊임없이 전환되었지만 그 저변에 있는 목표의 방향은 항상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었다. 그 자신이 했던 표현을 빌자면, 그는 국정을 마치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요트 항해에 비유했다. 더 나은 곳을 향해 이곳 저곳으로 항해를 하면서 때로는 표류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원했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타인들을 통해서 일을 할때 더 강해진다.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가 불구가 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공과 생존을 위해 가족, 친구와 지원자들에게 기대지 않으면 않되는 상황에 처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는 다섯 명의 뛰어난 병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좋은 가문 출신의 외교관 섬너 웰즈, 공화당원이며 향후에 스파이 수장이 된 “와일드 빌” 도노반, 사회사업가 이자 해결사인 해리 홉킨스, 공화당 대선 후보 웬델 윌키, 그리고 철도왕 에버렐 해리맨이 바로 그들이다. 루즈벨트는 이들을 특별사절단으로 유럽에 보냈으며 이는 전쟁과 미국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 5명의 특사들은 그의 외교정책의 영감이자 도구였다. 셋째, 적을 내편으로 만들어라. 철학자이자 전시 외교관 이었던 이사야 베를린은 루즈벨트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하고 새로운 다양한 방법으로 인력을 활용하는데 있어 뛰어나 유연성과 순발력과 효과를 발휘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공화당의 고립주의 당파를 무력화 시키기로 결심한 그는 공화당원 중 거물급 국제주의자인 웬델 윌키를 키웠다. 루즈벨트는 심지어 과거의 대선 후보 라이벌을 포함한 어느 누구라고 할지라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넷째, 호기심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루즈벨트의 국정 운영 방식은 독특한 면이 있었다. 그는 지휘 계통을 분리시켰다. 그는 의전을 뒤로 밀어놓고 행정 기관의 업무를 서로 교차시켰다. 종종 그는 단일 임무를 다수의 인물들에게 맡겼다. 이런 광기어린 국정 운영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다양한 소스를 통해 정보를 얻음으로써 단일 소스를 통해 얻는 정보에만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조언자들을 서로 대치하게 함으로써 각 주장의 강점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권한의 분산을 통해 통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리더쉽 요소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그는 경이로울 정도의 용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가 애송했던 시는 ‘Invictus(정복불능, 윌리암 어니스트 헨리)’이었다. 비록 문이 좁을지라도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여기서도 엿볼 수 있든 그는 기개로 충만한 정치인 이었다. 마이클 풀리러브는 호주 시드니에 소재한 로위 연구소의 소장이며 ‘운명과의 조우: 어떻게 루즈벨트와 그의 5인의 병기가 미국을 전쟁과 세계 리더로 이끌었나’ 의 저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