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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누리고 더 행복해지기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뉴욕시를 떠났고 일상이 좀 편해졌던 4년전이었는지, 남편 알레한드로의 커리어가 본 궤도에 올라 가처분소득이 늘었던 때였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더이상 비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됐던 때였는지. 언제 어떻게였든 우린 지난 4년동안 젊고 무일푼이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식으로 ‘풍족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Marta Antelo 뉴욕에 살 때는 좋은 와인 한 병 사는 것도 큰 행사였다. 남편과 같이 와인가게까지 걸어가 꼼꼼하게 와인을 고르고 집에 돌아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곤 했다. 결혼하던 무렵 난 이미 요리를 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뉴욕 스트립스테이크나 포터하우스(맛좋은 대형 비프스테이크) 같은 요리는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 예산엔 맞지 않는 비싼 재료들이라 요리하다 망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또 우린 둘 다 끊임없이 일을 했기 때문에 TV도 별로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몇개월전 불현듯 나는 우리가 거의 매일저녁 와인을 마시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값비싼 스테이크나 심지어 일등급 소고기인 프라임비프도 너무 쉽게 사 먹을 뿐 아니라, 이제 TV 시청은 일상이 됐다. 올 7월 올림픽 프로를 잔뜩 시청하고난 후 아들 폴이 “엄마,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게 뭐게요?”라고 물었다. 난 6살짜리처럼 생각해 보며 “글쎄, 북극? 알래스카?”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TV 광고를 흉내내며 의기양양하게 “바로 ‘쿠어스 라이트죠!’”라고 소리쳤다. 순간, 난 이 ‘풍족한’ 삶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난 우리가 그동안 이룬 재정적 성공을 자축하는 한편 모든 것이 귀했을 때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를 생각하면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낡고 오래된 브루클린집 식탁에서 우리가 함께 마셨던 와인 한 병, 한푼 두푼 절약해 모은 돈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먹었던 저녁식사 같은 것 말이다. 젊고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건 ‘감사’라는 이름의 비밀 향신료였다. *** 먼저 나는 와인을 매일밤 일상처럼 마시는 행동을 자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시고 싶을때마다 마시는 대신 일주일에 두 잔으로 제한했다. 처음에는 내 의지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으나 즉시 긍정적인 결과를 봤다. 체중이 약간 줄었고, 밤에 더 늦게까지 깨어 있을 수 있었으며, 남편과 둘이 마셔대는 와인 양이 확 줄어 식료품비도 줄었다. 난 “당신도 이 계획에 동참해야 되요!”라고 남편을 다그쳤다. 남편은 “난 저녁 먹을 때 와인을 곁들이는 게 좋은데. 이 문제는 간섭하지 말아줘”라고 불평했다. 어쨌든 칼을 뽑은 김에 나는 가을 학기가 시작되자 ‘TV는 주말에만 본다’는 규칙을 적용했다. 원래 24시간 TV를 켜 놓는 집은 아니지만 남편은 자주 축구 경기를 켜 놓곤 하는데, 난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으로 아이들 TV 시청시간을 제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스테이크 요리를 제한했다. 내가 우리집 요리사이자 식단표 담당인지라 이 부분은 쉬웠다. 남편은 자기가 무슨 유명한 뉴욕 스테이크하우스 스미스앤울렌스키 구매담당이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뉴욕스트립을 사왔지만 그냥 냉동시켜 버렸다. 난 “주말에 해 먹어요. 이렇게 특별한 재료는 손님 초대 요리에 써야죠”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런 새 규칙들이 가혹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고 4살, 6살난 아들들은 (특히 TV 시청 제한 규칙에) 분개했다. 나조차도 내가 말도 안되는 청교도주의나 잠재의식 속 죄책감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구는 것 아닌가 싶었다. *** 만약 이런 규칙이 가져다 준 부수적이지만 놀라운 혜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계속하기 힘들었을 지 모른다.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동안 아이들은 TV를 보게 해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그 이후엔 태도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4살짜리 대니는 최근에 “주말까진 며칠 더 남았어요, 엄마?”라고 물었다. 폴이 대니에게 달력 보는 법을 알려주며 금요일까지는 이틀 더 남았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이틀만 더 있으면 ‘스머프’ 볼 수 있겠네!”라며 기뻐했다. 마침내 금요일이 되자 아이들은 자진해서 일찌감치 목욕을 마치고 양치질까지 얌전히 하고 나서는 우리 침대로 뛰어들어왔다. 이미 수백번 본 영화인데도 특별 TV 시청일에는 세계적인 히트작인 듯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내 와인 다이어트에서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보고 있다. 요즘엔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주문하면 웨이터에게 우선 시음용으로 소량만 갖다 달라고 부탁해 조금씩 천천히 음미한다. 세계 최고의 와인이 어떤건지 비로소 알게 됐다. 바로 일주일 내내 기다렸다 마시는 와인이다. 스테이크를 자신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소울푸드’로 여기는 남편조차 가끔씩 먹을수록 더 만끽할 수 있다는 진리를 인정하게 됐다. 약 2주전 부모님이 다니러 오셨을 때 우리는 남아메리카식 스테이크하우스에 가서 엄마 생신을 축하했다. 와인과 스테이크를 실컷 마시고 먹었으며 집에 돌아와서는 TV 앞에 널부러져 영화를 봤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남편과 나는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얘기했다. 남편은 “대체 음식에 뭘 넣은거지? 마늘인가?”라고 의아해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음식전문작가로 레시피를 파악하는 데 능통한 사람이다. 대체 뭐가 들어가서 그렇게 맛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아니. 마늘 때문이 아녜요.” 그건 비밀 향신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