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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내 나이 예순이다. 소위 환갑나이다. 왠지‘환갑’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의 옷 빌려 입은 것처럼 듣기가 거북하다. 나이를 한 해에 두 번 먹은 것도 아닌데 어찌해서 이리 빨리 왔는가. ‘환갑’이라는 인생의 정거장에 서 보니 11월 나목(裸木) 한 그루 외로이 서 있다. ‘퇴직’이라는 종착역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이 험한 시기에 아직까지 일한다는 것도 다행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 지울 길 없다.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고 회사에도 더 원숙히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는데 시간 이라는 이름의 기차는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진다 생일이 가까워오자 집사람이 이따금 이상한 행동을 한다. 저녁에 같이 있다가도 전화가 오면 얼른 딴 방으로 가서 소근소근 통화를 하기 일쑤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시침 뚝 따고 들어온다. 타 주에 사는 딸들과 내 환갑 생일 준비를 모의하는 모양이다. 나는 짐짓 모른체 했다. 어느 토요일 손자들도 볼 겸해서 뉴 져지에 사는 딸네 집엘 집사람과 함께 갔다. 오후가 되니 손자 친구들이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재미있어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레고(Lego) 놀이가 금방 시들해지는 모양이다. 두 손자 녀석들이 용수철처럼 뛰어 나가자 집안은 거짓말 처럼 조용해졌다. 덕분에 나는 한가한 시간을 보너스처럼 갖게 되었다.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잡지를 뒤적이다 깜빡 잠이 들었다. 달콤한 오수를 즐기는데 누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딸이 산책 가잔다. 낮잠이 아쉬웠지만 이왕 깬 것, 나는 부시시 일어나 따라 나섰다. 딸은 나를 차에 태우고 동네 중심가로 나갔다. 파킹하고 거리로 들어섰다. 오가는 사람들에 치이며 윈도 샤핑을 하며 걷는데 어느 커브 길에서 딸이 발길을 멈춘다. “아빠, 여기서부터 눈감고 가야 해. 내가 꼭 붙들고 갈 테니까 넘어질 걱정은 말고." "왜 눈을 감니. 사람들이 다 보쟎니." 깜짝 놀란 나의 대꾸에 딸은 단호하다. "아빠, 딴 사람들 상관하지 마.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가진 사람 없어. 어서 눈 감아요." 하며 내 팔을 꼭 잡는 품이 어떻게든 나를 소경으로 만들어 데려 갈 작정이다. ‘얘가 깜짝 쇼를 연출할 모양이로구나.’ 호기심에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딸은 나를 붙잡고 몇 걸음 가서 오른 쪽으로 돈다. "여기 층계가 넷 있어요." 층계를 다 올라 가니 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벼란간 왁자지껄 소리들이 내 귀에 쏟아져 들어왔다. "눈 떠, 아빠." 소경 잔치에 아버지를 만난 심청이가 외치듯 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번쩍 떠 보니 수 많은 자전거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자전거 가게 였다. 사람들은 그 자전거들 사이에 삼삼오오 서서 구경도 하며 흥정도 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자전거들이 벽에 걸려있고 대형 칼라 사진도 심심챦다. "날 사주려고?" "응. 소라(둘째 딸)와 내가 돈 모았어 아빠 환갑 선물 사려고.” "환갑?" 반갑지 않은 단어가 또 튀어나왔다. 그래도 그 감정은 잠간, 나는 기쁨의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전 처음 내 자전거를 가진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것 저것 타보며 고르다 보니 작히 두어 시간은 흘렀나 보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찾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즐거운 바이킹(Biking)이었다. 황혼이 구름을 빨갛게 물들이는 길을 우리 둘은 달렸다. 딸은 앞에서 차를 몰고 나는 그 뒤를 자전거를 타고 따랐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며 머리칼을 흩날린다. 빨간 불에 차가 조심스레 서면 나는 그 뒤에서 손 부레잌을 잡아 뒤뚱거리며 정지했다. 파란 불로 바뀌면 다시 힘있게 페달을 밟아 딸의 차를 따랐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중학교 시절에 배웠다. 거의 오십년 전 9.28환도 후 였다. 친구의 부모님이 동네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했다. 그 집의 유일한 그 운송수단이 자전거였다. 운송용이기 때문에 뼈대가 아주 굵고 등치가 컷다. 그리고 몸체에서는 언제나 비릿한 생선 비린내가 났다. 내 친구는 저녁을 먹고 부모님들이 집에서 쉬고있을 때면 몰래 자전거를 끌고 나와 나를 불렀다. 그 애는 자전거를 참 잘 탔다. 안장에 앉지 않고도 페달을 밟아 스케트를 타듯 유연하게 지쳐 나갔다. 그렇게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나면 다음에는 내 차례다. 그 애가 뒤에서 자전거를 꼭 잡고있으면 나는 벌벌 떨며 안장에 앉는다. 워낙 운동신경이 둔해서 자전거와 함께 수없이 넘어졌다. 내 정갱이와 팔꿈치가 깨지는 것은 그래도 괞챦다. 자전거가 골병이 들었다. 워낙 무거운 놈인데 내가 전봇대며 남의 집 담을 사정없이 박았으니 어찌 안 그러랴. 친구는 부모님에게 수없이 야단을 맞았단다. 그래도 끈덕지게 몰래 끌고 나와 나를 가르쳐 주었다. 나의 자전거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친구네 자전거 한 대를 망가트리고서야 제대로 타는 요령을 터득했다. ‘정지하면 쓰러진다. 빨리 가야 안정된다.’ 장성해서 사회에 나가보니 우리 인생도 이 자전거 타기와 비슷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회사 신입사원이 되었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도로를 ‘회사’라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는 1960년대 말이라 산업화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고조되던 시기였다. 나는 힘껒 페달을 밟아 달렸다. 잠간이라도 쉬면 넘어질 것 같고 또 남에게 뒤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휴가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신혼여행은 속리산에 며칠 다녀왔다. 그리고는 곧장 일터로 향했다. 살아 온 길을 되돌아 보면 순탄하게 달릴 때도 있었지만 울퉁불퉁 험한 땅을 엉덩방아 찧어가며 넘어질 듯 엉기기도 했고 가파른 언덕배기를 힘겹게 오르기도 했다. 너무 힘들 때는 내려 끌고 가기도 했다. 그 때는 자전거가 도리어 짐이 되어서 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바보처럼 꼭 붙잡고 달리다 보니 그 자전거는 우리 식구를 태평양 넘어 이 곳 필라델피아까지 날라다 주었다. 이렇게 나는 ‘회사’라는 자전거를 타고 오늘 여기까지 왔다. 머지 않아 내 분신 같은 직장이라는 자전거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쓸쓸하게 한다. 한 직장에서 33년을 봉직하다 보니 세상에 나가 다른 일을 할 다른 지식이나 재주도 없다. 주말에 집에서 밀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종종 나를 엄습한다. 그럴 때면 일을 멈추고 차고에 나가 자전거를 내린다. 싸움터에 나가는 장수가 투구를 쓰듯 내 머리에 안전 헬멧을 쓰고 끈을 조인다. 말을 타듯 자전거에 올라 바람을 가르며 동네를 누빈디. 어느 날 마태복음 10장 16절을 읽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세상 살아가는 요령을 내가 자전거 타기를 통해 친구에게 배웠듯, 제자들도 전도 요령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웠음을 알 수 있다. 또 예수님은 그들의 여행을 위해서 각자에게 신을 준비해 주시고 불신자 집에서는 신발을 벗어 먼지까지 털라고 지시하셨다. ‘회사’라는 자전거를 내리는 날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님을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직장이라는 자전거를 주신 분이 예수님일진대 그 분은 또 다른 자전거를 준비하여 주실 것이다. 자전거를 바꿔 타는 날, 한 쪽 페달은 지혜, 다른 한 쪽은 순결, 그것을 균형 있게 밟으며 천국 문 앞까지 가리라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