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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작성자 dk
작성일 2013-06-08 15:02
ㆍ추천: 0  ㆍ조회: 4913      
나는 왜 이 사진을 찍었는가


세상에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한 마디로 인생을 구수하게 기술한 명인은 그리 많지 않을듯 하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문은 아일랜드의 작가 버나드 쇼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며 살더라니 내 이럴줄 알았지”. 전에도 이 촌철살인의 글을 만난 적이 없지 않았지만 나이 70 고개를 넘어 서니 바로 나를 향한 호령으로 들려 온다.
근자에 들어 내겐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친지들 장례식에 참석해 식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며 낮익은 이름의 묘를 찾아 본다. 비석 옆에 앉아 먼 하늘의 구름이나 먼 산의 푸르름을 보다가 고개를 숙여 촉촉한 잔디의 풀잎을 만지며 생명을 생각한다.

우리 교회 묘지는 교회 주차장과 본당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교회당에 들어가려면 꼭 이 곳을 지나여 한다. 여기 뭍힌 모두가 우리에겐 낮선 이 교회당 창립 당시의 교인들이어서 우리 한국인이 구입해 입당한 후로 이 묘지는 그저 남의 땅으로 정기적으로 제초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오며 가며 이 묘지에 들어가 서성이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줄 마추어 나란히 서있는 비석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면서 묘비에 새겨진 주인공들의 이름, 출생, 사망 연대를 들여다 보는게 재미있다. 그러다가 재치있게 쓰여진 묘비명을 만나면 인생의 멘토를 만난듯 반갑기까지 하다. 그 짧은 글 속에 그들의 인생관이 녹아있어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나름대로 그려 보기도 한다.

어느날 나는또 교회 묘지를 찾았다. 버릇처럼 여기저기 소요하다가 저 쪽 뒤에서 여느 것과는 좀 색다른 묘비가 나의 눈길을 잡아 끌었다. 묘비 상단에 단 한마디 “내 남편 (MY HUSBAND)”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가. 나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묘비 주인공의 이름은 사무엘 모톤(SAMUEL MORTON), 1804년 10월 20일 출생, 1892년 3월 11일 사망”.

색다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비석은 그 옆의 비석 쪽으로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옆의 것도 이 쪽으로 기울어 마치 두 묘가 머리를 맞대고 몸을 기대는 형상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나는 그 옆 기울어진 또 하나의 비석으로 다가 갔다. 약간 작은 크기에 “수잔나 모톤(SUSANNA MORTON)”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아, 이 두분은 부부 사이로구나.’ 그렇다면 옆의 큰 묘비에 ‘내 남편’이라고 새겨 넣은 사람이 바로 이 분이시로구나. 생전에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으면 그 좋은 말들을 다 마다하고 이 한마디, “내 남편”을 묘비에 새겼을까. 묘비를 읽어보니 모톤 여사는 8년 후인 1900년에 돌아가시어 남편 옆에 묻히셨다. 남자인 모톤씨의 묘비 글씨는 불툭 튀어나온 양각(陽刻)으로 쓰여졌고 수잔나 모톤여사는 속으로 패인 음각(陰刻) 글자들인 것도 흥미로웠다.


두 비석 앞에 서서 나는 이 비석들의 사연을 나름대로 그려보았다. 내 상상력은 날개를 활짝 펴 시간을 가로 질러 먼 옛날로 비상한다. 1900년 1월 어느날 교회묘지 바로 이 자리였다. 밤새 잔설이 와서 푸른 잔디가 흰 눈 위로 살짝 머리를 내미는 그런 날이다. 친지들의 애도 속에 모톤여사의 관이 내려졌고 그 덮힌 흙 위에 조그만 비석이 세워졌다. 8년간 외롭게 서있던 모톤씨 묘비 옆에 바짝 아주 가깝게….
그로부터 또 수많은 밤과 낮이 교대하며 시간이 흘러 간다. 흐르는 시간 속에 모톤씨 부부를 묻었던 친지들도 하나 둘 모두 세상을 떠났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고 귀뚜라미 소리 해맑은 어느 가을 밤 묘지. 모톤 여사가 가만히 남편에게 속삭인다.
“여보, 추워요. 좀 가까이 오세요.”
“허어, 내 발이 땅에 묻혀 꼼짤할 수가 없구려” 모톤씨가 조용히 대답한다.
“알아요. 그럼 조금만이라도 제게 몸을 기울여 주세요. 이렇게요.”
그러자 모톤여사 비석의 한 쪽 흙이 조금 가라앉으며 비석이 남편 쪽으로 기울어졌다. 모톤씨도 이에 응답하듯 부인 쪽으로 묘비 무게 중심을 옮겼다. 모톤여사가 속삭인다.
“여보, 너무 좋아요. 우리 영원히 이렇게 서로 기대고 있어요.”
둥근 달이 대화를 듣고 환히 웃으며 하얀 달빛을 더 밝혀 준다. 이윽코 동녁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해가 얼굴을 내민다. 하얀 달이 다시 맺어 준 이 인연은 붉은 해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제 아무 것도 이들을 떼에 놓을 수가 없었다.

영속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방황하던 나는 오늘 이 두 비석을 만났다. 아니, 두 분의 영원한 사랑의 현장을 찾았다고 해야 옳겠지. 이런 사랑이라면 틀림없이 천국에 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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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연을 어떻게든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우선 묘비의 글자들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야겠다. 햇볕이 옆에서 경사각도로 내려 비치면 양각, 음각 글자에 그림자가 생길 것이다.

다음에는 이들 부부사랑이 천국 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 무엇을 사진에 집어 넣어야 할텐데… 천국은 하늘 저편에 있을 것이니 ‘영원한 사랑’을 ‘하늘’로 보여주자.

이렇게 계흭을 하고 나니 이제부터 할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햇살이 묘비글자에 경사지게 비칠 때 까지 나는 그 자리를 맴돌았다. 시간은 강물처럼 천천히 흐르고 해는 흐느적거리며 중천하늘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해가 서편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묘비 글자들이 햇볓을 받아 반짝이며 그 뒤로 까만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한다. 가슴이 뛴다. 하늘을 쳐다 보니 마침 하얀 구름이 점점이 떠 있다. 천국을 상징하는 완벽한 배경이다. 나는 잔디 위에 온 몸을 찰싹 붙이고 카메라를 땅에 대고 앵글을 들어 위를 향했다. 하늘을 배경으로 묘비가 빛나고 있었다.

두개의 비석, 푸른 하늘, 흰 구름, 카메라 그리고 나, 우리는 모두 하나였다.

“찰칵”
그것은 순간이었을까, 영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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