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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작성자 Hongtchung
작성일 2013-07-15 18:44
ㆍ추천: 0  ㆍ조회: 3940      
어느 한국 여인의 특별한 인생
 조사 (Eulogy) - 박봉희 권사 Viewing시
 
여기 주 안에서 매우 크신 권사님이 누워 계십니다.
체구가 커서 크신 분이 아니고, 목소리가 커서 크신 분도 아닙니다.
생전에 자수성가하여 돈 많이 벌어 자선을 크게 한 적도 없으셨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지도 않으셨습니다.
지위라면, 젊었을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노년에는 명예권사님 이셨던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저는 박봉희 권사님을 말할때 주 안에서 크게 살다 가셨다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1900년대 초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행복한 시절, 안정된 나라에서 태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거기다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더욱 힘겹지 않았을까요?

박봉희 권사님은1923년 9월 15일 서울 장안, 지체있는 가문, 셋째 딸로 태어나셨습니다.
두 여식에 이어 세번째에도 딸을 나으신 어머니는 혹여 문 밖에 들릴까 소리 죽여 우셨고,
집안 어른들은 안방에서 못마땅한 헛기침만 하셨다 합니다.
그러나 이 셋째 딸 봉희는 그 아래로 아들만 셋 주루룩 낳게하는 복(福)의 문(門)을 열어 놓았답니다.
예쁘고 똘똘한 봉희는 자라며  형제자매 중 가운데에서 평형을 맞추어 주었고 어른들의 귀염을 한껒
받았습니다. “저 놈이 치마를 둘러 여자지, 사내로 태어 났으면 대장감이네. 츳츳” 하시며 짐짓 눈 흘기시는
집안 어른들도 입가에 어리는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어른들 몰래 시험을 보아 경기여자중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사납다”라고 하시며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게 하시는 할아버지의 눈을 피하여
아버지는 딸을 위해 사무실에 교복을 감춰두었습니다. 봉희는 집에서 나올 때는 평복차림으로  
아버지 사무실로 가서, 거기서 다시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경기여고 졸업생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경기여고 31회 졸업생들은.삼일(3.1)졸업생으로 통하며
학교전설이 될 만큼 출중한 인재들이 많았다 합니다. 물론 봉희 학생도 이 중 한 명이었고요. 

여고 졸업 후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졸업 후 첫 근무지로 서강국민학교에 배치를 받아 본격적인 사회인으로서 발을 내 디디었습니다.
 
해방이 되던 1945년 봉희 선생님은 합동통신사 엘리트 기자 정광현씨와 혼인하여 첫 딸 혜영이를  낳았습니다.  
정 기자는 승진을 계속하여 1950년에는 사회부장직에 올랐습니다. 일본 사람이 쓴 <내가 넘은 삼팔선>이란 책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 베스트 셀러가 되어 돈암동에 조그만 집도 마련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주윗 사람들의 축복 속에 두번 째 아기를 임신하여 이번에는 아들을 기대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까지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인 그 날은 마침 정광현 부장의 숙직날이었습니다.
아침 7시  숙직실, 정 부장은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일본 조일신문사(아사히 신문)에서
국제전화로 북한군의 남침 소식을 알리며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민간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6.25 북한군 남침 정보가 정 부장에게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정 부장은 지체없이 상사와 신문사에 급보를 알렸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피난민 대열이 북쪽 미아리 길을 꽉 채우며 끝없이 서울로 밀려 들어 왔습니다.
공산군이 진주하면 제일 먼저 체포될 통신사 직원들인지라 모두 급히 피난길을 떠나 갔지만
정 부장은 남들 처럼 재빨리 행동할 수가 없었답니다. 임신 8개월의 부인과 세살난 딸 혜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지만 겨우 간 곳이 만리동 처가집이었습니다.
 
일단 여기서 묵으며 사태를 보아 한강 다리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국군이 이미 반격을 시작하여 공산군을 무찌르며 북상하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고
그냥 계시기 바랍니다.”하고 국민 위무 방송을 하더랍니다. 다른 소식은 없고 같은 녹음 방송이 하루 종일 계속
이어집니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만삭의 아내와 세 살 딸을 보며 고민하는 어느 밤,  “꽝! 꽝!”  땅 흔들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남쪽 하늘에서 화염이 치솓고 있었습니다. 한강 남 쪽에 주둔해 있던 국군의 <한강폭파 작전>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방송을 믿고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제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안 있어 인민군이 진주하였고 지체없이 반동분자 색출작전이 시작되었지만, 집안에 숨어 있던
정광현 부장 가족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동네 반장을 앞세운 민청 직원이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루에 있던 정광현 부장은 고무신을 신고 내려가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물어 볼 것이 좀 있다고 잠간 같이
가자는 말에 뒤를 돌아보며 “금방 다녀 올께.”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그들과 함께 어둠 속에 사라졌습니다.
바로 오겠다며 고무신 바람에 나간 남편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종무소식이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새댁은 만리동에서 딸을 데리고 다시 돈암동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방에
수소문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공산군은 지식인들을 체포하는 대로 모두 서대문 형무소에 집결시켜 놓았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즉시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만들어 싸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전차 버스 다 끊어진 길가에는 수 많은 시체들이 가로수 잎에 덮혀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어떻게 서대문 형무소까지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도착해 보니 수 많은 사람(지식인)들이 운동장에 가득 앉아 있고 사방에는 무장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더랍니다. 그 군중 가운데서 드디어 정 부장을 찾아냈습니다. 그도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누렇게 뜬 얼굴, 눈과 볼이 쏙 들어간 초쵀한 몰골.  집 나갈 때의 그 고무신 그대로 겠지.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도시락을 들고 총든 경비 군인에게 다가가 “저-기 저 사람”에게 전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답니다.
만삭의 젊은 부인이 불쌍해 보였던지 그 군인은 도시락을 받아,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전해 주었습니다. 도시락을 받아든 정 부장은 부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희미한 미소.
그리고는 집에 가라는 손짓을 하고 돌아 앉아서 도시락을 먹더랍니다. 남편의 이 모습은 권사님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일평생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혹여나 대문 열고 들어오시지 않을까 문소리만 나면 달려 나가던 그 발길도 날이 갈수록
힘을 잃었고 끝없이 흐르던  눈물도 어느덧 두 뺨에 말라 버렸습니다.

길가에서 반동분자 잡아 죽이는 따발총 소리가 뜸해지자 이번에는 공습경보 싸이렌 소리,  B-29폭격기
날아가는 소리와 지상의 고사포 쏘는 소리가 서울 장안을 뒤덮었습니다. 밤이 되면 등화관제로 온 천지가
깜깜하기만 합니다.
산모에게 진통이 온8월 25일 밤도 이랬습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겨우 산파를 찾아 데려
올 수 있었습니다. 촛불 하나 켜 놓은 방의 빛마저 새나갈까 모든 창문은 담요로 두텁게 가려졌습니다. 산모는
물론 온 식구가 피 같은 땀으로 방바닥이 흥건할 때 “아-앙” 소리와 함께 산파의 밝은 목소리, “순산에 아들
입니다.”에 모두 안도의 숨을 돌렸습니다. 
몇 달전부터 정 부장은 불러오는 아내의 배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말하곤 했는데
정작 아버지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엄마는 유복자 아들의 이름을 항렬따라 정영기라고 지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바뀌고 U.N.군과 함께 광명이 왔지만 남편 정광현 부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7세의 젊은 과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교편을 잡았고, 집에서는 두 남매를 거느린 가장이 되었습니다.
젊고 예쁘고 똑똑한 여 선생님에게 그 숫한 홀아비, 총각들이 얼마나 많이 연모의 정을 쏟았겠습니까. 

그러나 젊은 어머니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두 남매의 양육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옳고 그름이
분명했고 매우 엄격하셨다고 합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자식들은 장성하여 출가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1978년 딸 혜영과 사위 김규화 장로의 전도를 받아 초로(初老)의 박봉희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신자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글을 쓰셔서 교회지에 발표하셨습니다. 글 속에서

권사님은 자기 비극적 삶의 반추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의 행복과 기쁨을 노래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계셨던 마지막 일주일간도 펜과 종이를 옆에 두시고 힘이 닿는대로 주님과의 대화를 적으셨습니다.


 

이 시대 한국민족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겪으신 박봉희 권사님.

지금은 여기 이렇게 편안히 누워 계십니다. 저는 조금 전 박봉희 권사님을 <크신 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끝을 맺으며  권사님을 <복받은 신자>라고 말하겠습니다. 

누가 복 받은 신자입니까?
자기의 끝 날을 계수하는 자가 복 받은 신자입니다. 권사님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주님께 돌아가실 것을
예고받았고 그 후 자기 몸에 붙어있던 모든 의료 기구를 빼게 하고, 기타 세상 인연의 모든 줄을 깨끗히
정돈하셨습니다. 

누가 복 받은 신자입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찬송가 속에 눈을 감는 사람이 복 받은 신자입니다. 권사님은 유복자 정영기
장로의 집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신부의 손을 신부의 아버지에게서
건네받듯, 예수님은 박봉희 권사님의 손을 정영기 장로에게서 건네받고 천국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아들 정영기, 딸 정혜영은 아직도 어머니가 늘 들려 주시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단다.”하시며 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하셨고, “먼 산은 항상 푸르게 보이는 법이란다.”하시며 헛된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만족할 것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님은 가셔도 그 뜻은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 속에 남을 것입니다. 
 
권사님,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에요.
지난번 Abington병원에서는 제가 권사님을 위해 기도했지만 이제부터는 권사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셔야해요. 주님과 손잡고 가는 길, 뛰놀며 가세요.

정홍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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