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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작성자 Hongtchung
작성일 2014-06-13 17:33
ㆍ추천: 0  ㆍ조회: 6123      
<동화> 아무도 살지 않는 호수















옛날 옛날 한 옛날, 아주 깊은 산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꼬불꼬불 논길을 한참 

가다보면 조그만 마을이 나오고 그 뒤에는 높고도 깊은 산들이 첩첩이 자리를 잡

고 있습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열 여나문 채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메산골입니다. 마을 뒤로는 나뭇꾼 다니는 길이 산 속으로 꾸불꾸불 좁고 길게

쳐 들어갑니다. 한참을 따라 가다보면 길마져도 지쳐서 끊어지는데 거기서도 더

어가면 아주 조그만 호수가 보입니다. 낮에는 토끼랑 노루가 와서 목을 추기고

이 되면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멱을 감고 재재대며 놀다 가기도 하는 곳이죠.


이 호수 속에는 조그만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이름은

<깃발>이랍니다. 헤엄 칠 때면 위로 쪽 뻗은 꼬리가 멋지게 흔들려 꼭 깃발을

흔드는 것 같다고 친구들이 지어 주었죠. 또 한 마리는 <샛별>입니다. 유난히도

반짝이는 두 눈이 몹시도 예뻐서 깃발이가 그렇게 부른답니다.
 
깃발이와 샛별이는 아주 사이가 좋아요. 작은 호수인지라 먹을 것이 언제나 부족

했지만 똑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날아가던 꿩이 콩이라도 한 알 흘리면 둘이는 

콩을 공삼아 주고받으며 놀다가, 그것도 지치면 콕콕 쪼아 두 쪽을 내어 나누어 먹

었습니다. 근처 동네 친구들도 많이 있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하루는 아기 노루

가 물을 먹으러 와서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었어요. 저 쪽 커다란 참나무 밑에 굴

을 파고 사는 산토끼 부부가 어젯밤 아주 예쁜 새끼 토끼를 여섯이나 낳았대요.

깃발이랑 샛별이와 아기 노루는 이 아기 토끼들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 주려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습니다. 또 간밤에는 부엉이 할아버지가 오셔서 호랑이

담배먹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매일같이 동네 친구들이 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깃발이와 샛별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달님아저씨입니다. 달님은 높이 떠서

세상 여기저기를 비쳐주기 때문에 참으로 아는 것이 많아요. 달님도 깃발이와

샛별이를 참 좋아해서 슬픈 이야기, 우스운 이야기, 신나는 이야기를 밤새도록

들려 주곤 합니다.


어느 밝은 여름 밤이었어요. 둥근 달님이 동산에서 둥싯 떠 올랐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함박꽃 같은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으시고 호수에

내려와 깃발이와 샛별이를 불렀습니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 줄까나.”

달님이 둘을 번갈아 보며 물었습니다.

"저 먼 나라 왕자님 얘기를 해 주세요."

깃발이와 샛별이는 나란히 머리를 물 위에 내 놓고 열심히 들었습니다. 별들도

조용히 귀를 기울였어요. 얼마가 지났을까 달님이 동쪽 하늘을 쳐다봅니다.

“얘들아, 이제는 가야겠다. 벌써 먼 동이 트기 시작했구나.”

정말 산 꼭대기가 발갛게 물들어갑니다. 별들도 급히 사라집니다.

“내일 꼭 오셔서 또 얘기해 주셔야해요.”

허둥지둥 산을 넘어가던 달님이 멈칫 서더니 몸을 돌리십니다.

“아이 참, 깜빡 잊었구나. 꼭 알려줄게 있는데…..”

“무언데요? 좋은 일인가요?”

아니야. 아주 무서운 소식이 있어. 요 재너머에 무서운 사냥꾼이 아들을 데리고

단다. 날이 새면 사냥꾼은 호랑이 잡으러 산으로 가고 자기 아들은 여기서

낚시를 할꺼야.”

“낚시가 뭐얘요?”

“낚시란 뾰족한 쇠갈고리 끝에 맛있는 음식을 감추어 놓고 나희들을 꾀이는

것이야.”

“그거 먹으면 안 되나요? 우린 언제나 배가 고픈데……”

“그걸 먹기만 하면 그 속에 있는 쇠갈고리가 네 입을 뚫고 들어와 너는 꼼짝

없이 잡혀 올라가게 되지. 그럼 모든게 끝장이야.”

“아 아, 무서워. 왜 우릴 잡으려 하나요? 우린 아무 나쁜 짓도 안 했는데……”

“글쎄나 말이다. 사람들 중에는 나쁜 이들이 아주 많단다. 저희들끼리도 서로

뻿고 싸우고 죽이고….그것도 모자라 그저 재미로 짐승들을 마구 잡아 죽인단다.”

“그럼 어떡해요? 우린 혼자선 못 살아요.”

“그러니 내 말을 잘 듣거라. 절대로 절대로 돌 틈에 숨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와선 안돼.”

“나온대도 먹지만 않으면 될 것 아냬요?”

“아니지, 이 호수에 붕어들이 있는 것을 알면 물을 다 퍼서라도 잡으려 할껄. 아이

내 정신 좀 봐. 이젠 장말 가야겠다. 내 말 꼭 잊지마라. 내일 밤 또 오마.”

달님은 허둥지둥 서산을 넘어 갔습니다. 깃발이와 샛별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무서움에 떨었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


달님 아저씨가 서 쪽 산을 넘어가시자 얼마 안 있어 동녁하늘이 바알갛게 밝

아오기 시작합니다. 아저씨 말대로 저 쪽 숲 속에서 한 사내 아이가 길다란

장대와 망태기를 들고 호숫가로 걸어옵니다. 깃발, 샛별이는 돌 틈에 몸을

감추었습니다. 깃발이의 꼬리가 파르르 떨렸고 샛별이의 눈은 겁을 잔뜩 먹은 채

아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사방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첨벙” 



 


수면이 작게 흔들리며 조그맣고 노란 물건이 사르르 물 속으로 빠져 들어옵니다. 

둘이는 꼭 붙어서 숨을 죽이고 내려오는그 것을 바라봅니다. 둘이의 코 앞에서

더 내려가지 않고 정지합니다. 노란 덩어리 위로 실같은 끈이 보였습니다.

주위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바람마저 숨을 죽였습니다. 

“맴 – 맴 -맴 ”

멀리서 매미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갔을까요. 뛰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어 갑니다. 저절로

둘이의 코가 간질간질해 지더니 입에 군침이 돕니다. 뱃 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닙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사실 엊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거던요. 깃발이의

꼬리가 살랑살랑 저도 모르게 흔들립니다. 입이 벙긋벙긋 열립니다. 이제 깃발이의

눈에는 저 노란 덩어리가 커다랗게 다가오는 듯하고 냄새가 코를 못살게 굽니다.

깃발이의 몸이 사르르 앞으로 미끄러져 나아갑니다.

“안돼.”

샛별이가 깃발이의 꼬리를 살짝 물어 끌어 들였습니다.

“달님 아저씨 말씀 생각해 봐. 너 없이 난 못살아.”

샛별이의 귓속말에 깃발이는 정신이 바짝났습니다.

“아참, 그렇지. 샛별아 고맙다.”

둘이는 다시 꼼짝않고 그 노란 물건을 쳐다 보고만 있습니다. 그 노란 떡밥은

둘을 아주 아주 배고프게 만듭니다. 둘이는 손을 꼭 잡고 참았습니다.



또 얼마가 지났는지……

해는 머리 위에서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갑니다. 산 속의 모든 동물들도 자기

굴이나 둥지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아 조용합니다. 해가 서산에 지려하자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에이, 여긴 고기가 하나도 없쟎아. 하루 종일 헛탕만 쳤네.”

아이가 투덜거리며 낚싯대를 쭉 뽑아 올렸습니다. 그 노란 것이 벼란간 휘익

올라갑니다. 하마터면 샛별이가 그것을 따라 물 위로 펄쩍 뛰쳐 오를 뻔 했습니다.

깃발이가 몸으로 앞을 재빠르게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도구들을 주섬주섬 망태기에 집어 넣습니다. 그 노란 떡밥이 들어있는

깡통 들여다 보더니 호수에다 휙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는 장대와 망태기를

들고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도 둘이는 돌 틈

에서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달님 아저씨가 동산에서 둥실 떠 올랐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얼굴이 조금 찌그러져 보입니다. 호수 위에 멈추어 조용히 물 속을 들여다 봅니다.

“깃발아, 샛별아.”

조심스레 불러봐도 고요한 수면에는 달님의 얼굴만 되 비칠 뿐입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그것들이 기여코 잡혀갔구나. 얘들아. 깃발아. 샛별아.”

달님은 물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불러봅니다.

“네, 우리 여기 있어요.”

모기만한 소리가 돌 틈에서 들려 옵니다.

“얘들아. 아제는 나와도 돼. 아이는 이제 아주 갔단다.”

“와아. 그래요? 야아 신난다.”

둘이는 너무 좋아 숨어있던 돌 틈에서 쏜살같이 나와 춤을 추며 돌아갑니다.

꼬리 깃발이 멋지게 흔들리고 샛별의 눈은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깃발이가 물 위

로 “첨벙” 뛰어 오르면 샛벽이 그 뒤를 따라 “첨벙”.

수면은 여기저기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 갑니다. 별들도 같이 춤을 춥니다.

“그만, 그만 이제 그만. 어지럽구나. 원. 하루 종일 굶고도 배도 고프지 않니?”

그제서야 둘이는 엊저녁부터 오늘 하루종일 굶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젠 됐어. 그 노란 것 마음껒 먹으렴.”

“입찌르는 것이 이젠 없을까요?”

샛별이는 아직도 걱정입니다.

“이젠 괞챦아.”

둘이는 용감히 그 노란 떡밥에 돌진하여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도 맛이 있을까?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를 않아요.

“그만 먹고 이젠 물 위로 나오렴.

몇 번 재촉을 받고서야 둘이는 마지못해 물 위로 떠 올랐어요. 달님은 어제 밤에

세상에서 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어제는 그렇게도 재미있던 이야기가 오늘은 별로 재미가 없어

졌어요. 아니, 달님 아저씨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조차도 않아요. 얼마동안 듣

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샛별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간만요. 달님 아저씨. 잠간 내려갔다 올테니 계속 깃발이에게 얘기해 주세요.

담에 깃발이에게 들을께요.”

미쳐 대답도 듣기 전에 샛별이는 쏜살같이 먹이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고 말았

습니다. 달님은 얼굴을 조금 찡그리시더니 깃발이에게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깃발이 마져도 마음은 온통 그 노랗고 맛있는 떡밥에만 가 있습니다.

그저, “네, 네….” 헛대답만 하고 있습니다. 샛별이가 그것을 다 먹으면 어떡하나

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어요. 드디어 깃발이도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미안해요. 달님아저씨. 저도 잠깐 내겨가서 먹고 올께요.”

미쳐 대답도 듣기 전에 깃발이는 재빨리 돌아섰습니다. 물 위에 비친 달님의

찌그러진 얼굴이 파문에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퍼져 갑니다. 별들도 숨을 죽이고

물 속을 들여다 봅니다. 깃발이는 급히 샛별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갑니다. 


샛별이는 그것도 모르고 떡밥을 게걸스럽게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만 먹어, 이것아. 네가 다 먹어 치우겠다.”

깃발이는 샛별을 힘껒 밀어 붙였습니다. 정말 샛별이가 미웁게만 보입니다. 

“왜 밀어. 너도 먹으면 되쟎아.”

샛별이가 뽀루퉁 깃발이를 노려 봅니다. 깃발이는 못 들은체 그저 먹기만 합니다.

“좋아. 혼자 싫컷 먹으렴. 흥!”

샛별은 홱 돌아서 물 위로 떠 올라 갔습니다. 달님 아저씨에게 일르려고요. 그러나

달님 아저씨는 구름 속으로 이미 들어가셨고 빗방울이 하나, 둘 물 위에 떨어

집니다. 마치 달님아저씨의 눈물같았어요.

“아저씨, 달님 아저씨.

큰 소리로 부르던 샛별이의 목소리가 점점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번쩍 번개가 치

더니 천둥소리가 대답하듯 ‘우르릉’ 울려옵니다. 먹구름은 더욱 검어지고 무서운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



그 뒤부터 깃발이는 샛별이가 싫어졌습니다. 샛별이도 깃발이에게 눈길 한

주지않고 가까이 오지도 않습니다. 둘이는 그저 떡밥 주위를 맴돌며 서로 감시

합니다. 하루는 깃발이가 생각했어요.

‘저 노랗고 고소한 떡밥만 있으면 난 샛별이 없어도 멀마든지 살 수 있어. 그럼 

모두 내 것이 되쟎아.’

어느 날은 꿈까지 꾸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마음놓고 떡밥을 싫컷 먹는 그런

꿈이었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샛별이도 똑 같은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을까?’

깃발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자는 동안에 몰래 다가와서 갑자기 물어 뜯어

죽이지나 않을까?

이 생각이 들자 전에처럼 눈을 감고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부터

깃발이는 눈을 부릅뜨고 샛별을 노려보며 잠을 잡니다. 그러자 샛별이도 알아차린

것 같아요. 샛별이도 눈을 뜨고 잠을 잡니다. (그 때부터 고기들은 눈꺼풀이 아주

붙어버려 눈을 뜨고 자게 되었답니다.) 저 위에서 달님이 아무리 불러도 둘이는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올라간 사이 쟤가 혼자 먹을까봐서요. 어느 깊은 밤,

깃발이는 너무 고단해서 눈을 뜬 채 그만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문득 기척이 나서

후다닥 깨어보니 떡밥은 거기 그대로 있었습니다.

“후 유”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자세히 보니 왠걸 샛별이가 온 몸을 떡밥 속에 꾸겨넣고 

정신없이먹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아니, 저것이.”

깃발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절로 꼬리 깃발이 창같이 뾰족하고

날카로와졌습니다. 샛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힘을 다해 샛별 옆구리를 들이

박고 닥치는대로 물어 뜯었습니다. 정신없이 먹던 샛별이는 깜짝놀라 깃발이를

멍하니 쳐다보았어요. 전에 보던 그 깃발이가아니었습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었고 날카로운 이빨들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어요.

샛별이는 갑자기 허리가 몹시 아파 왔어요. 깃발이가 물어뜯은 상처 속으로

뼈가 환히 들여다 보입니다. 너무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발이에게 달려듭니다. 엎치락 뒷치락 오르락 내리락 둘이는 한 덩어리가 되어

밀고 물며 싸웠습니다. 바닥의 진흙이 떠올라 물이 시뻘겋게 흐려지고 물결은

마구 출렁입니다. 그렇게 얼마를 싸웠는지….. 샛별이가 힘없이 수면 위로 떠

올라갑니다. 그 예뻣던 눈이 초점을 잃고 몸이 움직이지를 않아요. 그래도 깃발은

헐떡헐떡 쫒아가며 계속 닥치는대로 물어 뜯었습니다. 그래도 샛별이는 아무

저항을 하지 않는거얘요. 물 위에서 미는대로 밀려갑니다. 떨아져 나간 비늘이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며 샛별이 주위에 떠 있었습니다.

“이젠 다 내 꺼야.”

깃발이는 쏜살같이 떡밥있는 데로 달려갑니다. 먹이 속에 몸을 쑤셔박고 마음껒

먹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터질 만큼 먹었는데도 아직 많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끔 저 위를 쳐다 보았습니다. 샛별이는 여전히 몸을 옆으로 누인 채 둥둥 떠 있

기만 합니다.

“깃발아, 깃발아.”

달님아저씨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막다 말고 위로

헤엄쳐 올라갑니다. 그러나 샛별이가 먼저 보였습니다. 달님은 그 너머에 있는

모양입니다. 깃발이는 숨이 탁 막혔습니다. 꼼짝못하고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정지

했습니다.

가만히 몸을 돌려 바위 구멍에 숨었습니다. 달님아저씨는 빛을 더 밝게하여

깃발이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럴수록 깃발은 더 깊숙히 몸을 감춥니다.


달님이 서산에 넘어가고 나면 또 그 노란 떡밥에 몸을 담그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을 때만은 모든 것을 다 잊을 수가 있었고 좋았습니다. 배불리 먹고는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며 혼자 놀다가 또 가서 먹습니다. 샛별이가 수면에 아직도 떠 있어서

감히 위로 올라 갈 생각도 못하고 바닥에서만 놀았습니다. 어느덧 뭍동네 친구들도

발길이 끊어졌습니다. 물을 먹으러 호숫가에 왔다가는 샛별이가 죽은 것을 보고는

소스라쳐 놀라 저 멀리 숲속으로 달아납니다. 그리고는 다시 오지 않아요.

                         *****************************

밤과 낮이 여러번 수도 없이 지나 갔습니다. 어느 날 이 작은 호수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맛있던 노란 떡밥이 누렇게 변하는 것이었어요. 변한 건

색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맛도 시큼해 지더니 썩은 내가 나기 시작합니다.

깃발이는 먹기 싫은 것은 고사하고 냄새조차도 역겨워졌습니다. 정말 배가 아주

고파야 가서 조금 뜯어먹고는 얼른 도망치듯 멀리 가야 했답니다. 하루는 너무

허기가 져서 떡밥에 가까이 갔더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벌레들이 

그 속에 생겨 깃발이의 비늘 떨어진 살 속으로 파고 들어와 물어 뜯습니다. 너무 

놀라서 몸부림을 치며 멀리 도망을 갑니다.

‘샛별이가 있었으면 몸에 붙은 이 벌레들을 콕콕 쪼아줄텐데….”

처음으로 샛별이가 보고싶어 졌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저 위를 쳐다 보았습니다.

샛별이가 떠 있고 그 위에 달님아저씨가 있을 그 곳을 멀거니 올려다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샛별이도 달님도 전혀 볼 수가 없는 거얘요.

물이 탁하게 흐려져 있을 뿐이 아니라 썩는 냄새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 옵니다.

냄새와 벌레들 때문에 깃발이는 돌 속에 숨어서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제는나가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힘도 빠졌습니다. 냄새나는 물에 숨이막혀도, 

벌레들이 달려들어 마두 물어 뜯어도 깃발이는 그냥 몸을 내맡겨 버렸습니다.

하늘하늘 깃발의 율동이 점점 약해져만 갑니다.

얼마가 지났을까요.

깃발이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나가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저 높은 곳을 쳐다 보았습니다. 충혈된 눈을 슬프게 뜨고 올려다 보았습니다.

샛별이가 못견디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샛별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운이 없어 말은 입 속에서 맴돌았고 울고 싶은데 울음도 나오지를 않아요.

“샛별아, 샛별아.”

그냥 입만 벙그거리며 샛별이를 불렀어요. 그러자 저 위 샛별이의 몸이 꿈틀꿈틀

뒤척이더니 전 처럼 똑바로 몸을 가눕니다. 그리고는 꼬리를 흔들어 헤엄 칩니다.

푹 패어져 있던 눈이 초홍초롱 빛이 납니다. 깃발이는 깜짝 놀라 다시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랫더니 샛별이는 곧 바로 깃발에게 헤엄쳐 오고 있지 않아요?

다정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히 머금고 힘있게 다가 옵니다.

“깃발아. 나 불렀어?”

샛별이가 전에도 그렇게 예뻣던가? 하고 깃발이는 생각했습니다

“응. 나 죽기 전에 네게 꼭 내가 잘못했다고 얘기하고 싶었어. 이젠 이 것 다 네가

먹어. 난 너만 바라보아도 이렇게 배가 부른걸.”

깃발이는 뱃 속에 공기를 불룩하게 집어넣고 기우뚱 기우뚱 좌우로 흔들며

헤엄칩니다.

"하 하 하."

샛별이가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댑니다. 


예뻐진 것은 샛별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깃발이도 변해 있었습니다. 

은빛의 촘촘한 비늘, 우아하게 너울거리는 꼬리의 깃발…. 그 모든 것이 다 옛날

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깃발이가 샛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샛별의 따뜻한 손이

마주 잡아 옵니다.

“샛별아, 우리 달님아저씨께 가야지.”

"그래, 그래."


둘이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나란히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헤엄쳐 올라갑니다.그런

데 이상하죠? 이제는 물 위에서도 물 속에서와 똑 같이 헤엄을 칠 수가 있게 되었

어요. 하늘로 하늘로 달님아저씨를 향해서 신나게 올라갑니다.

저 밑에 둘이 살던 호수가 보이더니 주위 산들이 보입니다. 점점 작아지던 호수가

제는 조그만 점이 되더니 아주 안 보이고 말았습니다. 큰 산너머에 넓은 바다가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달님아저씨가 환한웃음을 얼굴 가득히 채우며

마주 달려 오시고 있어요. 수 많은 별들이 박수를 치며 깃발이와 샛별이를 맞아줍

니다. 



                     ----------------끝 -------------------- 




추기 : 이 동화는 양희은의 팦송 <작은 연못>에서 힌트를 받아 쓴 것입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는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 오르고

그 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엇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이름아이콘 차문환
2014-07-30 08:48
나이는 늙지를 않지요?
장로님 마음에 푸른 동화같은 그림이 계속 그려지고.....
이 글을 신문에 연재해서 싣도록 해봐야겠어요....
자리 나면 갖다가 얹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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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3 <동화> 아무도 살지 않는 호수
옛날 옛날 한 옛날, 아주 깊은 산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꼬불꼬불 논길을 한참 가다보면 조그만 마을이 나오고 그 뒤에는 높고도 깊은 산들이 첩첩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열 여나문 채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두메산골입니다. 마을 뒤로는 나뭇꾼 다니는 길이 산 속으로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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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시조) 삼우가 (三友歌)
칠십의 길 휘적휘적 석양에 걸어가네혼자가면 외로울 길 반려있어 한걸음 길고개정상 소나무여 그늘만 길리누나그림자 늘린다고 지는 해를 잡을손가소슬바람 땀닦으며 지나온길 돌아보다시야를 가린 것은 구름이냐 눈물이냐길곁에 우물정자 어이해 못보았나쪽박을 내리워서 갈증을 풀고보니육신에는 약수냉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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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자화상 인생
내 나이 73세. 그 중에 근 50년을 카메라를 옆에 두고 살아왔다. 카메라라는 기구는 내 앞의 사물이나 사람을 찍게 만들어져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내가 나를 찍을 수가 없다. 그러나 미술가가 자화상을 그리듯 사진가도 의도적으로 기술을 부려 자신을 찍기도 한다.  나는 내 카메라로 여러 번 자신을 찍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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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시) 젖은 눈으로 목련을 기린다
목련을 보노라면 눈물이 난다. 하늘하늘 가녀린 가지들 엄동설한 견뎌내고 송이송이 피워내니 푸른 하늘 흰 구름 봄의 교향악 눈으로 듣는다.   미안하다 목련아  나 이제까지는 너희들 바라보며 "야, 멋있네!", 카메라 셧터 한 번 누르고 발길을 돌렸었지. 나 이제부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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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1 생명 승계의 원리
3월에는 로스엔젤스에 사는 둘째 딸 집에 가서 지내고 왔습니다. 두 살, 다섯 살의 손자 둘이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딸아주어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왔습니다. 둘째 놈에게는 새 장남감이 거의 없고 형이 쓰던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첫째보다 둘째는 주위의 관심을 적게 받고 자라기가 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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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혁대없이 산 하루
토요일 밤 늦게 귀가하는 바람에 주일 예배시간에 자명종 시계 맞추는 일을 잊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일 아침에 아내는 성가대 연습을 하러 일찍 나갔고 나는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선잠에 눈 부비며 시계를 보니 “아차” 예배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와이샤쓰 넥타이 양복 양말을 허둥지둥 몸에 걸치고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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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6 종이 신문에 작별을 고하노라
“어제 신문 구독을 끊었어요.”며칠 전 아침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한 말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을 끊자고 아내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해 왔기 때문이다. 은퇴 후, 우리는 살던 집을 팔아 지금 사는 이 콘도미니움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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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심심이' 동생은 '삼삼이'
2014년 정월 초 하룻날,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인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e-mail Card가 내 컴퓨터에 떳다.  e-mail Card 제목: 心心心 내용 : Happy new year 그리고 아래와 같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 카드를 보내신 분을 언제 뵈었던가? 얼마 전 식당에서 스치듯 만나뵌 것을 제하면 작히 5년은 넘을성 싶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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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4 2014년 나의 좌우명 정하기
지난 정월 초 하루(2014년 1월 1일) 미국 NBC TV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올 일 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라는 토픽을 내걸고 전문가를 초빙해 조언을 구했다.  올 일년은 흘러가는대로 그냥저냥 살지 말고 어떤 자기만의 목적을 정해놓고 매일매일을 맞이하면  매우 보람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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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8 2013년 세모에 인생을 생각하며 시를 읽다
2013년 크리스마스도 예년처럼 그렇게 저렇게 보냈다. 지금은신년 2014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할 차례다. 더 이상 지금까지 살아 온 대로는 살지 말자 결심도 해 보지만 이것도 매년 똑 같은 년례 행사. 작년 이맘 때도 희망과 계흭을 꼭 차게 세웠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는 좀 달라질 때도 되었건만…..마음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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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2 (동화) 12월에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
 하나님, 안녕하세요?오늘은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을 말씀드리려 해요.아침 시작종이 울리자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시고 재잘재잘 떠들던 우리들도 모두 제 자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 오시면서부터 자꾸 웃으셔요. “자, 이제부터 조금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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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8 손자를 기다리며
   나는 지금 손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손자라는 말만 들어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 오름은, 그 해해대는 웃음소리, 아장아장 걸음걸이, 연한 풀잎같은 살의 감촉, 향기로운 젖내음의 기억 때문이리라. 이런 특징들을 안 가진 아이들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 모든 공통점 위에 ‘내 피붙이’라고 하니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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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5 까마귀를 검다하는 당신은 색맹
   얼마 전 나는 까마귀 두 마리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 까마귀를 구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가을 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필라델피아 교외 나버스 타운(Narberth Town)을 드라이브하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라 빌딩은 높지 않았고 가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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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악수>의 나라에서 <악수>는 제대로 하고 계십니까 (올바른 악수 법)
  서양 사람들은 악수로 인사를 한다. 모든 만남은 악수로 시작하고 악수로 끝난다. 이들은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이 전통을 가꾸어 왔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별 차이가 없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악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그래서 악수에 대한 기본 상식과 올바른 악수법을 소개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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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0 한글의 어머니는 세종대왕, 아버지는 ?
2013년 10월 9일은 한글이 제정된지 567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올해다시 법정 공휴일로 재 지정되었다. 23년 만의 희소식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재의 첫째가 한글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이 한글에 대해서는 수많은 글들이 발표되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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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4 (시) 깊은 산 속 개울가
  돌돌돌듣는 사람 없어도 저 혼자 노래하며 흐르는 개울물가에 피어난 꽃이 한 송이 저 혼자 빨개지네  돌돌돌 그거 혹시 흐느낌 아닐까개울 밑 자갈들의 조용한 밀담꽃잎 하나 떨어져 저 혼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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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시와 송창식 노래가 곁들인 혼인 주례사
평생 처음으로 주례 부탁을 받았습니다.신랑 아버지로부터 주례 부탁을 받고 나서, 주윗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주례사를 할 수 있지요?” 사람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대답. “주례사라는 것은 식장을 나갈 때 다 잊어버리는 거야. 짧을수록 좋아.” 생각해 보니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수 없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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