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주요 메뉴

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작성자 Hongtchung
작성일 2014-02-06 12:20
ㆍ추천: 0  ㆍ조회: 5337      
종이 신문에 작별을 고하노라


“어제 신문 구독을 끊었어요.”
며칠 전 아침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한 말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을 끊자고 아내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해 왔기 때문이다.

은퇴 후, 우리는 살던 집을 팔아 지금 사는 이 콘도미니움으로 이사왔다.

새 삶의 터를 꾸미면서 아내는 고속 인터넷 을 설치하고는 큰 선심을 쓰는 양
내게 말 했다.
“매달 인터넷 사용료를 100불 이상 지불하니까 이제부터는 문명의
이기와 더욱 친해 지세요.”
인터넷 속에 들어가면 모든 신문 잡지가 다 있으니 보고 싶은 기사들을

모니터에 떠 올려 읽으라는 것이다. 나중에 필요 자료는 컴퓨터에 저장해
면 되니까 구태여 신문을 따로 구독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이 사람의 주장이다.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신문 하나 쯤은 꼭 보아야 한다고 줄기차게
우겨온 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내의 주장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지만

나는 나 대로의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걸 어떡하랴.

첫사랑처럼 달콤한 인연을 나는 오래 전부터 종이 신문과 맺어왔다. 이것을

아직 아내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고백한다 해도, 한정된
수입 내에서 살아가려면 그 안에서 지출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원칙에 내 청원은
한갓 철없는 애들의 투정같이 들릴 거라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다.

1953년 9.28 수복 후, 나는 열 세살 까까머리 소년이었다. 서울 돈암동에 살던

나는 어느 날 오후 친구를 따라 시내의 어느 신문사 앞엘 갔었다.(미도파 백화점
경향신문사 였다는 것은 후에야 알았다.) 가 보니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 애들이
길 가득히 모여 무엇을 기다리는 듯 삼삼오오 서있었다. 얼마 후 검은 잠바를 입은
키가 큰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와서 각자에게서 돈을 걷어가지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처음 본 어른에게 가져 온 돈을 몽땅 주었는데 그 사람이 사라지자 마음이
몹시 불안해 졌다.

얼마를 기다렷을까, 그 사람이 가슴 가득히 신문을 가져 오더니 우리 각자에게
돈 낸 만큼 나누어 주었다. 내 품에 안긴 한 뭉치의 신문에서는 아직도 띠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풋풋한 인쇄 잉크 냄새가 강하게 코를 자극했다. 받자마자 논에서 메뚜기
튀듯 우리는 제 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뛰기 시작했다.

“경향 신문요. 경향 신문요.”
신문을 팔에 들고 크게 외치며 나는 돈암동을 향해 힘껒 달렸다. 을지로, 종로,

돈화문, 창경원 앞 거리를 뛰어가니, 사람들이 나를 불러 돈을 주고 신문을
산다. 팔 위의 신문은 점점 가벼워지고 주머니는 돈으로 불룩해지며 무게가 느껴
졌다. 신문에서 나는 기름 냄새가 나를 쉬지 않고 뛰게하는 동력원이었다.

아, 그 때 만일 내가 신문 냄새에 반하지 않고 주머니 속의 돈 무게를 더 사랑했었

다면 아마 지금쯤 큰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하여간 난생 처음 내 힘
으로 돈을 번 것이 바로 이 신문 덕이었다.

그 후로 나의 신문사랑은 반세기를 넘어 변함없이 계속 되었다. 어린 나는 만화

<고바우>를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조금씩 들여다 보게 되었다. 또 만화 <왈순
아지매>를 보며 살벌한 세상을 유머적으로 해석해 웃으며 보는 방법도 해득했다.
언젠가는 서울신문 연재 소설에 김영주라는 화백이 삽화를 그렸는데 몇 줄 선(line)

만으로 그려진 젊은여자 주인공에게 홀딱 반한 적이 있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아니라 삽화로 그려진 처녀의 얼굴에 말이다. 지금도 그 녀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
르니 아마도 내 이성에 대한 첫사랑은 이 신문 속 삽화가 아닐까 한다.

요즈음도 신문 읽기는 내 하루 시작의 통과례 이다. 매일 아침 식사 후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며 신문을 펴면 온 세상이 내 손 안에 들어온 듯 뿌듯해 진다.
신문 옆에는 언제나 12inch 플라스틱 자와 가위가 따라 다닌다. 흥미 기사, 만화,
사진… 등등 나의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스크랲 감이다. 나는듯 마는듯한 
인쇄잉크 냄새는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안정시켜준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매일 가계부와 씨름하는
아내에게 나의
신문에 대한 고집을 계속하면 그것은 사치를 넘어 늙은이 망령으로 까지 보일
게 뻔하니까.

자, 마음을 정리하자. 그리고 잊어버리자. 손가락을 까맣게 물들이는 인쇄
기름과
잉크냄새, 좋은 기사 만날 때의 그 신선한 기쁨도, 그 기사를 오려낼 때 들리는  
‘사각사각사각’ 연한 가위질 소리도…… 이 모든 것이 세월이 가면 기억에서 지워질
수 있을까?

오래 전 직장 동료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거지신사>라는 조그만 조각품이 생각난다.

그 <거지 신사>는 공원 벤치에 폼잡고 앉아 신문을 펴 들고 있는데 바지는 헤져서
무르팍이 드러났고 머리 위 삐딱하게 걸친 낡은 중절모도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다.
이에 상관않고 신문을 넓게 펼쳐들고 있는그 얼굴은 만족과 여유가 넘쳐 흐른다.
그 신문의 제호는 이름하여 <New York Times>.

비록 남루한 옷을 입었을지언정 여유 있게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쫙 펴서 세상을

읽는 그 멋을 어떻게 집안 책상 앞에 앉아 싸움하듯 컴퓨터 화면을 쏘아 보는 모습과
비교할 수가 있을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을 본다. 배달 신문과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이별곡을 쓰고 있는 내 손은 종이와 펜 대신 컴퓨터와 마주해 글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까.


                                                                            -- 끝 --




 
이름아이콘 운암
2015-05-18 23:24
잘 읽었읍니다. 그런데 나 역시 마음이 아프네요. 경제적인 계산으로는 지당하신 판단이나, 우리의 삶이 정신적인  
양식이랄지 또는 낭만이라 할지? 우선 순위 결정이 부부 사이에서는 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작성일 본문내용 조회
2014-08-29 누군가?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 사람
2013년 2월 5일, 전 세계 개신교 신자들이 깜짝 놀랄 뉴스가 지구촌에 울려 퍼졌다. 개신교 단체 중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국제로잔운동 본부가 향후 20년간 이 단체를 이끌어 갈 리더로 마이클 오 목사를 선임했다는 것이다. “마이클 오 목사가 누구지 Who is Rev.Michael Oh?” 하는 것이 로잔 관계자들을 제외한 대부분 ..
7435
2014-08-18 <독후감>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 지구에서 나 좀 내려줘, 제발!”마구마구 소리지르고 싶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좋은 일들은 저 밤하늘 보름달 뒤로 숨어버린것 같고, 청천하늘 세계각처에선 무섭고 더러운 사건(事件)들이 쉴새 없이 터지고 있지않은가. 만일에 내가 외계인이라면 지구를 들여다 보며 영화구경하듯 재미가 쏠쏠할테..
28 9733
2014-07-29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카뮈의 <이방인>을 읽다
카뮈의 <이방인>은 한 여름, 그것도 땀이 뻘뻘나는 해 아래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50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 시절, 실존주의 철학이 열병처럼 대학가를 휩쓸었고 소설 <에뜨랑제> 즉 <이방인>은 그 중심에 서있었다. 불란서 문화원이 주최하는 동아리에서 혹은 친구들과의대..
1 6873
2014-06-13 <동화> 아무도 살지 않는 호수
옛날 옛날 한 옛날, 아주 깊은 산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꼬불꼬불 논길을 한참 가다보면 조그만 마을이 나오고 그 뒤에는 높고도 깊은 산들이 첩첩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열 여나문 채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두메산골입니다. 마을 뒤로는 나뭇꾼 다니는 길이 산 속으로 꾸..
1 6236
2014-05-21 (시조) 삼우가 (三友歌)
칠십의 길 휘적휘적 석양에 걸어가네혼자가면 외로울 길 반려있어 한걸음 길고개정상 소나무여 그늘만 길리누나그림자 늘린다고 지는 해를 잡을손가소슬바람 땀닦으며 지나온길 돌아보다시야를 가린 것은 구름이냐 눈물이냐길곁에 우물정자 어이해 못보았나쪽박을 내리워서 갈증을 풀고보니육신에는 약수냉수 ..
6097
2014-05-02 자화상 인생
내 나이 73세. 그 중에 근 50년을 카메라를 옆에 두고 살아왔다. 카메라라는 기구는 내 앞의 사물이나 사람을 찍게 만들어져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내가 나를 찍을 수가 없다. 그러나 미술가가 자화상을 그리듯 사진가도 의도적으로 기술을 부려 자신을 찍기도 한다.  나는 내 카메라로 여러 번 자신을 찍었지..
6207
2014-04-16 (시) 젖은 눈으로 목련을 기린다
목련을 보노라면 눈물이 난다. 하늘하늘 가녀린 가지들 엄동설한 견뎌내고 송이송이 피워내니 푸른 하늘 흰 구름 봄의 교향악 눈으로 듣는다.   미안하다 목련아  나 이제까지는 너희들 바라보며 "야, 멋있네!", 카메라 셧터 한 번 누르고 발길을 돌렸었지. 나 이제부터는 ..
5930
2014-03-31 생명 승계의 원리
3월에는 로스엔젤스에 사는 둘째 딸 집에 가서 지내고 왔습니다. 두 살, 다섯 살의 손자 둘이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딸아주어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왔습니다. 둘째 놈에게는 새 장남감이 거의 없고 형이 쓰던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첫째보다 둘째는 주위의 관심을 적게 받고 자라기가 쉽나..
5627
2014-02-26 혁대없이 산 하루
토요일 밤 늦게 귀가하는 바람에 주일 예배시간에 자명종 시계 맞추는 일을 잊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일 아침에 아내는 성가대 연습을 하러 일찍 나갔고 나는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선잠에 눈 부비며 시계를 보니 “아차” 예배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와이샤쓰 넥타이 양복 양말을 허둥지둥 몸에 걸치고 교..
5263
2014-02-06 종이 신문에 작별을 고하노라
“어제 신문 구독을 끊었어요.”며칠 전 아침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한 말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을 끊자고 아내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해 왔기 때문이다. 은퇴 후, 우리는 살던 집을 팔아 지금 사는 이 콘도미니움으로 이..
1 5337
2014-01-14 '심심이' 동생은 '삼삼이'
2014년 정월 초 하룻날,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인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e-mail Card가 내 컴퓨터에 떳다.  e-mail Card 제목: 心心心 내용 : Happy new year 그리고 아래와 같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 카드를 보내신 분을 언제 뵈었던가? 얼마 전 식당에서 스치듯 만나뵌 것을 제하면 작히 5년은 넘을성 싶다.&n..
12 5559
2014-01-04 2014년 나의 좌우명 정하기
지난 정월 초 하루(2014년 1월 1일) 미국 NBC TV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올 일 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라는 토픽을 내걸고 전문가를 초빙해 조언을 구했다.  올 일년은 흘러가는대로 그냥저냥 살지 말고 어떤 자기만의 목적을 정해놓고 매일매일을 맞이하면  매우 보람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그 전..
5045
2013-12-28 2013년 세모에 인생을 생각하며 시를 읽다
2013년 크리스마스도 예년처럼 그렇게 저렇게 보냈다. 지금은신년 2014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할 차례다. 더 이상 지금까지 살아 온 대로는 살지 말자 결심도 해 보지만 이것도 매년 똑 같은 년례 행사. 작년 이맘 때도 희망과 계흭을 꼭 차게 세웠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는 좀 달라질 때도 되었건만…..마음 정리 ..
5120
2013-12-12 (동화) 12월에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
 하나님, 안녕하세요?오늘은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을 말씀드리려 해요.아침 시작종이 울리자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시고 재잘재잘 떠들던 우리들도 모두 제 자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 오시면서부터 자꾸 웃으셔요. “자, 이제부터 조금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오지요?”..
5020
2013-11-08 손자를 기다리며
   나는 지금 손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손자라는 말만 들어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 오름은, 그 해해대는 웃음소리, 아장아장 걸음걸이, 연한 풀잎같은 살의 감촉, 향기로운 젖내음의 기억 때문이리라. 이런 특징들을 안 가진 아이들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 모든 공통점 위에 ‘내 피붙이’라고 하니 더 ..
1 4905
2013-10-25 까마귀를 검다하는 당신은 색맹
   얼마 전 나는 까마귀 두 마리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 까마귀를 구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가을 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필라델피아 교외 나버스 타운(Narberth Town)을 드라이브하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라 빌딩은 높지 않았고 가을을 ..
1 4879
2013-10-18 <악수>의 나라에서 <악수>는 제대로 하고 계십니까 (올바른 악수 법)
  서양 사람들은 악수로 인사를 한다. 모든 만남은 악수로 시작하고 악수로 끝난다. 이들은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이 전통을 가꾸어 왔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별 차이가 없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악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그래서 악수에 대한 기본 상식과 올바른 악수법을 소개할까 ..
5823
2013-10-10 한글의 어머니는 세종대왕, 아버지는 ?
2013년 10월 9일은 한글이 제정된지 567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올해다시 법정 공휴일로 재 지정되었다. 23년 만의 희소식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재의 첫째가 한글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이 한글에 대해서는 수많은 글들이 발표되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
4683
2013-10-04 (시) 깊은 산 속 개울가
  돌돌돌듣는 사람 없어도 저 혼자 노래하며 흐르는 개울물가에 피어난 꽃이 한 송이 저 혼자 빨개지네  돌돌돌 그거 혹시 흐느낌 아닐까개울 밑 자갈들의 조용한 밀담꽃잎 하나 떨어져 저 혼자 흘러간다
4967
2013-09-29 시와 송창식 노래가 곁들인 혼인 주례사
평생 처음으로 주례 부탁을 받았습니다.신랑 아버지로부터 주례 부탁을 받고 나서, 주윗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주례사를 할 수 있지요?” 사람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대답. “주례사라는 것은 식장을 나갈 때 다 잊어버리는 거야. 짧을수록 좋아.” 생각해 보니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수 없이 많..
4783
123

Copyright © 2005 G Tech Inc. All rights reserved.
WE DELIVER DIGITAL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