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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을 말씀드리려 해요. 아침 시작종이 울리자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시고 재잘재잘 떠들던 우리들도 모두 제 자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 오시면서부터 자꾸 웃으셔요. “자, 이제부터 조금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오지요?” 그걸 누가 모르나.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부터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쓰는 시간을 줄꺼예요. 지금 보내야 북극에 계신 산타가 받으시고 선물 준비를 하실꺼니까.” “야-아!” 우리들은 손을 흔들며 좋아했고 떠벌이 덕보는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어요.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일 년동안 착한 일 한 것과 받고싶은 선물 이름을 쓰면 선생님이 다 모아서 부칠 꺼얘요.” 교실은 금방 조용해졌고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납니다. 나도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받고 싶은 선물부터 써보자.” 첫번 째로 게임기가 떠 올랐습니다. 옆 집 순이가 그걸 가지고 얼마나 뻐겼는지….. 이번엔 꼭 받고싶다고 말씀드려야지. 그리고 속에 털 달린 가죽장갑, 말랑말랑한 야구글러브….. 갖고싶은 선물들이 끝도 없이 차례차례 나타납니다. 그것들을 모두 황금썰매에 싣고 공중에 채찍을 휘두르며 우리집 지붕으로 날아 오실 산타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다음에는 내가 그동안 했던 착한 일들을 쓸 차례입니다. 내가 무얼 잘 했더라... “훌-쩍” 그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옆을 쳐다 보았습니다. 내 짝 철수였어요. 아주 닳아서 몽당해진 연필을 주먹 속에 꼭 쥐고 철수도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코에서 누런 콧물이 마치 기차가 굴에서 나오는 것처럼 길게 자꾸자꾸 나오다가 입술에 닿을까 말까 할 때 “훌-쩍”하면 쏜 살같이 콧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또 조금 있으면 누런 코는 살살 기어 나옵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철수는 무슨 선물을 달랠까 궁금해졌어요. 그 애 아버진 작년에 건축공사장에서 일하셨는데 사고가 나, 시름시름 앓다가 몇 달 후 돌아가셨대요. 지금은 엄마가 청소부로 일해서 누나랑 세 식구가 살아간답니다. 생일이 되어도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우리들도 구질구질한 철수를 초대하지 않아요. 그래도 철수는 웃기도 잘 하고 친구들을 열심히 도와주곤해요. 참, 작년 일이 생각나네요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날이었어요. 교실에서 친구들이 선물 자랑을 할 때, 철수는 혼자 뒷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게 내 눈에 들어 왔어요. 그래서 그애에게 다가가 물었죠. “철수야, 넌 무슨 선물 받았니?” 그러다가 나는 깜짝 놀랐어요. 책을 읽는 그 애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지 않겠어요. “너 울고 있구나. 왜 선물을 못 받았니?” “아냐. 이 책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가 너무 불쌍해서 그래.” 나는 속으로 너보다 더 불쌍한 애도 이 세상에 있니?라고 생각하며 또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런데 넌 무슨 선물을 받았어?” 철수는 마지 못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털실장갑은 엄마가 짜 주었고, 산타할아버지는 연필 한 타스하구 공책을 주셨어.” 철수는 고개를 숙였고 눈물은 계속 철수의 바지로 떨어졌어요. 성냥팔이 소녀때문일까? 시시한 선물때문일까? 아님, 아빠가 보고싶어서 일까? 하나님, 왜 철수는 산타할아버지에게서 그것밖에는 받지 못했죠? 우리 반에서 그 애보다 더 잘 웃고, 또 남을 잘 도와주는 애가 어디 있어요? 저 맨 뒷 자리에 앉은 뚱뚱이 보영이는 욕심꾸러기, 거짓말장이인데도 열 개가 넘는 좋은 선물만 받았쟎아요? 산타할아버지가 이제는 너무 늙으셨서 보영이와 철수 선물을 바꾸어 주신 것은 아닐까? 지금도 철수는 저렇게 몽당연필로 열심히 쿨쩍거리며 쓰고 있는데 올 해도 또 바꿔치기 당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제 텔리비젼에서 본 바다 건너 먼 나라 텐트 촌에 사는 까만 애들이 생각났습니다. 전쟁이 나서 집이랑 가구들을 다 버리고 피난와 난민 수용소에서 산대요. 넓은 운동장엔 사람들이 끝도 안 보이게 늘어서 있었어요. 밥을 한 끼 타 먹으려고…. 산타는 그 애들도 알고 계실까? 아마 그 애들은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이 없어서 편지 쓸 생각도 못할꺼야. 연필도 공책도 다 집에 놓고와서 쓰고 싶어도 못하겠지. 저 애들이 산타에게서 선물을 한 아름씩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슬픈 눈을 가진 애들이 활짝 웃는게 보고싶어. 벼란간 아주 좋은 생각이 떠 올랐어요. 나는 받고 싶은 선물들을 다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올 해에는 우리 집에 오지 않으셔도 돼요. 그 대신 내 짝 철수네 집에는 꼭 가 주세요. 골목이 꼬불꼬불하고 집이 쪼꼬마해도 꼭 가셔야 해요. 작년처럼 보영이 꺼랑 바꾸시면 안돼요. 철수 편지를 잘 읽어 보시고 갖고 싶다는 것 다 주세요. 그리고 전쟁이 난 저 먼 나라에도 가 주세요. 보영이가 받은 것 같은 선물을 그 애들에게도 갖다 주세요. 그래서 밥 타먹는 줄 서지 않게 하시고 어른들 싸움도 말려주세요.> 이렇게 써 나가던 편지도 나는 다시 찢어 버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산타는 부잣집 아이들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재 작년 1학년 때도 철수는 선물을 별로 받지 못했고 보영이는 선물 자랑을 얼마나 했는데요. 또 부자들만 가는 으리으리한 백화점엘 가면 언제나 더 멋있는 산타가 웃고 있거던요.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나신 날이고 예수님은 너무 가난해서 말구유를 첫 침대로 쓰셨다는데 산타는 하얀 털 달린 빨간 옷을 입고 사슴들이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신나게 하늘을 날아 다니시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싼타 대신 하나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첫 크리스마스 날, 하나님은 외아들을 선물로 주셨죠? 왜 그렇게 가난한 목수의 집으로 보내셨어요? 난 알아요. 철수같은 애들의 친구가 되시려고 그러셨죠? 저 먼 나라 배고픈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시고 천국 이야기를 해 주시려고 그러셨을꺼야. 그래서 저는 산타에게 선물 달라는 편지 대신 하나님께 감사편지를 쓰기로 한 거얘요. 우리는 벌써 예수님이라는 선물을 받았쟎아요? 그렇게 큰 선물을 받고도 바로 이 때만 되면 우린 늘 받는 것만 생각했어요.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나도 이제부터는 나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생각할래요. 이렇게 할려고 해요. 엄마에게 부탁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철수네 세 식구를 우리 집에 초대해서 같이 저녁을 먹고 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 주신 일을 이야기 하겠어요. 크리스마스 새벽이 오면 난 몰래 일어나 츄리 밑에 있는 선물 중 나의 이름이 붙은 선물을 다 꺼집어 낼 꺼얘요. 선물 상자 위에 있는 내 이름을 떼어내고 그 대신 산타의 카드를 붙여서 철수네 집 대문 앞에 놓고 올꺼얘요. 카드에는 이렇게 쓰겠어요. “너희 집 굴뚝은 너무 좁아서 이 선물을 모두 집 문 앞에 두고 가노라.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자선 남비를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래요. 제가 저금한 돈을 조금씩이라도 넣고서 불쌍한 아이들을 생각할께요. 딸랑딸랑 종을 치는 그 분들께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크게 웃겠어요. 그리고 저 먼 나라 불쌍한 애들에게도 하나님의 선물, 예수님 얘기를 카드에 써서 보내겠어요. “예수님의 나라는 배고픈 것 없는 나라, 아픈 것 없는 나라, 죽는 것 없는 나라, 전쟁이 없는 나라, 예수님은 그런 나라로 우리를 데려 가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단다. 그 분은 우리들의 친구야. 우리 모두 같이 손잡고 그 분을 따라 가자꾸나.”라고 쓸 거얘요.> 하나님, 밤이 깊었나봐요. 꿈 속에서라도 예수님을 뵙고 싶어요. 드릴 말씀이 아주아주 많이 있어요. 그렇지만 난 더 많이 말씀을 들을꺼얘요. 이번 크리스마스도 하얗게 온 세상을 칠해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