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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이 가까워오니 길가에 낙옆 쌓이듯 나의 우체통에도 쎄일(Sale)광고 전단지가 매일 수북히 배달된다. 전단지 버리다가 자칫 중요한 우편물까지 섞여나갈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달랑 두 장 남은 달력을 내려놓고 11월에는 ‘감사절’, 12월엔 ‘크리스마스’ 두 날짜 위에 빨간색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는 마음의 빗장을 조이며 읊조린다. 이제부터 ‘메일(Mail)단속’, ‘대문(Door) 단속’ 철저히 하자. 이게 무슨 짓이야. 감사의 계절이 오면 훈훈한 정을 새롭게 하여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지 더욱 단속하며 조이다니? 예수님이 묻고계신 ‘네 이웃’은 어디로 갔지? 그것도 잠간, 마음은 슬슬 바빠지며 몰려오는 각종 행사와 선물 리스트(Gift List)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미리미리 준비해 그 날에 가서 허둥대지 않으려면 쎄일 전단지(Sale Advertisement)도 눈여겨 보아야겠다. 쎄일 전단지마다 터키새(Turkey Bird)가 즐거운 듯이 웃고있다. 어떤 터키는 청교도 모자까지 쓰고 행복해 한다. 감사절은 터키 굽는 계절이니 터키들도 행복해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잠간! 이건 아니다. 거짓말아닌가. 진실을 말하자면 감사절 저녁 집집마다 터키가 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터키 수난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수 천만 마리의 터키들이 단기간에 도살을 당해야 하는데, 우리 뇌 속에는 어느덧 행복한 터키의 상(Image)만이 그려져 있다. 장사꾼들의 지능적 공략에 우리는 어느덧 세뇌당해 그들의 장단에 맞추어 행복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춤추는 무대 뒤 에서는 그 많은 터키들이 매일 대량 도살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터키새들이 어떤 식으로 도살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장사꾼과 도살자들의 극비 사항일테니까. 12월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면 나는 성경 속에서 또 곁길로 빠진다. 2000여년 전 12월 25일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인해서, 그 때 베들레헵에서 태어난 간난아기들 수 백명은 이유도 모르고 죽어야 했다.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그 지방, 그 또래 아이들 전원에 대해 학살 명령을 내린 까닭이다. 간난 아기들은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르니 그렇다치고 부모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슬펏을까? 참, 나도 한심한 인간이다. 모두가 행복한 계절에 꼭 이렇게 초를 쳐 분위기를 망쳐야 한단 말인가? 감사의 달을 맞아 남들과 같이 즐거워하고 잔을 높이 들면 안되나? 그야 내 눈만 딱 감으면 안될리 없지. 그래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사를 하려면 그 감사가 있기 까지 혹 우리 눈에 띄지 않은 희생자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목례 정도의 감사라도 해야 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또 ‘감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반대말이 무엇일까도 생각해보았다. 구글을 두드려보니 그 반대말은 ‘당연’이라고 한다. 우체부가 매일 나의 집 우체통에 배달해 주는 것은 제 월급을 받기 위함이요, 식당에서 웨이터가 요리를 가져다 주는 것도 다 제 직업이니까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당연’의 마음씨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면 감사할 일이 없어지고 남의 흠이 크게 보여 주위에 못 마땅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천상천하(天上天下)유아독존(唯我獨尊)>이 되어 자연히 그 사람의 눈꼬리는 올라가고 입술 끝은 내려가게 마련이다. 나는 오늘도 일간신문의 뉴스를 읽고나서 지방판에 나오는 부고란(Obituary Page)을 찾는다. 고인들 모두가 미국 사람들이니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올 리야 없지만 돌아가신 이들의 사진과 생전의 업적들을 읽으면 그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인상좋은 분의 사진일수록 하나같이 입 양 끝이 올라가 미소가 생기고 눈꼬리가 내려와 온순한 얼굴을 만든다. 생전의 경력을 읽으면 그 행적 또한 아름답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인물들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복받는얼굴은 웃음이 새겨진 얼굴이고 그 얼굴은 ‘감사’의 마음이 매일 조금씩 조각해서 빚어진 작품이로구나. 자, 이제 감사의 계절을 맞아 내 할 말은 다 했고 또 하나의 글이 완성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나도 한번 크게 웃자. 으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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