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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작성자 dk
작성일 2013-05-17 16:17
홈페이지 http://www.gtech.tv
ㆍ추천: 0  ㆍ조회: 6158      
아버지 (II) ---시려운 만남, 그리고 그 언덕을 넘어서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철이 조금씩 들면서 나는 왜 아버지가 없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끌어안고 머리만 쓰다듬어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내 물음에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나는 그런 질문은 다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가슴 속에 아버지에 대한 의문이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아버지를 잊기도 하고 아버지 생각을 더 하기도 했다. 아버지 없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읽고 또 읽었다. 고구려 유리왕이나 플루타크 영웅전 속의 테세우스 황제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나의 단골 메뉴였다.

혹시 나의 아버지도 이런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는 혼자만의 꿈을 키워 나갔다. 아버지가 내게 신표를 남겨 놓았다면 어떤 것을 어디에다 숨겨 놓았을까, 언제 엄마는 나를 따로 불러 근엄한 얼굴로 나에게 그 비밀을 가르쳐 줄까? 겁 없이 내게 대들기만 하는 저 동생 놈이 그 때는 꼼짝 못하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유리태자나 테세우스처럼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될 가까운 곳에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돈암동 나의 집에서 전차 한 번만 타면 되는 거리였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높은 분도 아니었다. 내게 신표를 남길만한 분이 아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께 보내어 학비와 용돈을 타 쓰게 했다. 학기 초가 되면 어느 이른 새벽 어머니는 나를 깨운다. 새벽에 가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에 그 집에 들려 학비와 용돈 명세를 드려야 했다. 그 때 돈을 주면 좋고, 언제 다시 오라고 하면 다시 또 새벽에 가야 했다. 어느 때는 두 번, 세 번도.

일년 365일 중 나는 그 날이 제일 싫었다. 수학시험 날보다도 훨씬 더 싫었다. 나를 보내는 어머니의 표정이 유난히도 엄해서 감히 안 가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그렇게 좋던 엄마가 왜 이 날만은 그렇게 무섭고 단호한지 이해가 안 갔다.

나를 맞는 아버지는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성난 듯 딱딱하고 사무적이다. 인사 할 여유조차 얻지 못하고 학비와 용돈의 명세를 내미는 내 손은 금방 오그라들 듯 떨렸다. 대문 앞에서의 삭막한 대화가 끝나면 얼른 돌아섰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아버지 집에 갈 날이 가까워지면 성난 어버지 꿈을 꾸기도 했다. ‘아버지’ 하면 ‘무섭고 싫은 사람’으로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아갔다. 아버지하고 같이 안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니 왜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감직도 하다. 나를 볼 때마다 잊고 싶은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되어 그랬나 보다. 혼인의 서약을 저버린 자기 자신에게 회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사람 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수학 중 만났다. 풋풋한 사랑 속에 평생을 기약하는 결혼식을 올렸다. 고생 끝에 아버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안되어 어머니를 배신했다. 병원의 한 간호사와 딴 삶을 시작한 것이다.

천성이 조용하고 맑은 어머니는 사랑이 떠난 사람과의 아귀다툼 대신에 아들이 크면 학비를 대 주겠다는 약조만 받고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혼인 전 직업이었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되돌아갔고 남은 생을 오로지 자식 둘을 키우며 사셨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어머니가 불렀다. 또 아버지에게 가라신다. 이번 학기는 학비도 다 탔는데… 그런데 그 날은 친할아버지 제삿날이란다. 평소 돈 탈 때처럼 집 문 밖에서 그냥 돌아오지 말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두루 어른들을 만나 뵙고 큰절을 하라는 명령을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 가겠다고 버텼다. 어머니는 이 때 생전 처음으로 매를 들었다. 이를 악무신 어머니의 얼굴은 너무나 무서웠다. 고개를 숙이고 집을 나서는 나의 손에는 아버지의 신표 대신 왕복 전차표 두 장만이 달랑 쥐어져 있었다.

그 날 아버지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거기서 나는 두 이복동생들도 만났다. 아버지와는 달리 다른 어른들은 내게 매우 친절히 대해 주었다. 특히 작은아버지라는 분은 내게 각별했다. 그 분으로부터 나는 내 근본을 알기 시작했다. 학교 국어시간에 눈을 감고 외웠던 ‘사미인곡’의 작가 송강 정철이 내 13대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른들이 두툼한 족보를 꺼내 그 속의 수많은 한문 이름들과 그들의 관직을 설명해 주셨다. 그 족보의 맨 끝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전율했다. 다음 날 아침 그 집 대문을 나서는 내 손에는 작은 직계 족보가 들려져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 반에서 내가 시를 제일 잘 낭송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리고 그토록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족보 속의 어느 할아버지는 한일합방 시 낙향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항거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 몸 속에 시인의 피와 애국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비록 유리왕이나 테세우스처럼 훌륭한 아버지를 갖지는 못했지만 이 아버지를 통해서 그 윗대의 선조들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생존해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친사촌들을 만났다. 그 후부터 제삿날 아버지 집에 가는 것만은 싫지 않았다.

만일 어머니가 나를 억지로 아버지에게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내 근본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몰랐을 것이다.

옛말에 어머니를 모르고 산 사람은 평생 슬프고 아버지를 모르고 산 사람은 평생 외롭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구멍을 메우지를 못하고 살았다. 그 분이 한번이라도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더라면,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었더라면 이렇게 허허롭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장성한 나는 취직해서 미국에 오게 되어 아버지를 찾아 갔다. 그 때 아버지는 작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 아버지를 보고 나서도 나는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예의적인 대화를 나누고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끝내 마주 앉아서 허심탄회한 부자간의 대화를 가질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저 싫은 단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국에 와서 나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진지한 신자가 되기까지 나는 또 한 차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나를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바로 그 분이 ‘아버지’란다. 내가 경험한 아버지의 상(像) 때문에 이 두 번째 아버지에게 선뜻 다가설 수가 없었다. 아버지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런 마음의 벽 속에 갇혀서 또 2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교회 부흥회에서 욥기 강해 설교를 듣다가 깨져 버리고 말았다. 탕자를 위해서는 아버지가 대문 밖에서 기다렸지만 나를 위해서는 그 아버지가 내 삶의 터널 속으로 손수 들어와서 내 손을 잡고 나오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40년이라는 긴 아픔의 터널 문을 빠져 나올 때 캄캄한 마음의 깊은 속에서부터 오열이 북받쳐 올랐다. 댐 터진 물처럼 왜 그렇게 눈물과 울음이 나오는지 나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해서 예배 중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엉엉 소리쳐 울었다. 눈이 붙도록 울었다. 한없이 울었다.

옛 아버지가 파 놓은 구멍은 이제 새 아버지가 넘치도록 채워 놓으셔서 아버지에 대한 선입관은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옛 아버지의 웃음이 어떠셨을까 궁금해 하며 그럴 때마다 내 아이들을 돌아 보며 미소 짓는다.
 
이름아이콘 차문환
2013-09-05 16:46
그러셨군요... 마음 고생이 많으셨겟어요.
저는 8살때 돌아가셔서 아버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제 블로그 에세이란에 아버지 가지 마세요 란 글이 있어요....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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